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수십억 개의 글과 댓글이 올라오는 인터넷은 언어학자들에게 ‘노다지’다. 인터넷 언어는 비격식어다. 언어학자들은 웬만한 것은 다 밝혀진 격식어보다 실제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비격식어에 관심이 많다. 그렇게 ‘인터넷 언어학’이 탄생했다.

인터넷 언어학자인 그레천 매컬러는 《인터넷 때문에》에서 인터넷을 통해 언어의 변화를 좇는다. 언어가 변하는 주요 동인 역시 인터넷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끼리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한 인터넷은 언어의 진화를 가속화했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뤄질 언어의 변화를 수십 년으로 압축했다. 매컬러는 “인터넷 언어의 숨겨진 패턴을 분석하면 우리가 쓰는 일반적 언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구어(口語) 분석은 언어학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은 뱉고 나면 사라진다. 녹음한다고 해도 이를 녹취록으로 풀어내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게다가 막상 얼굴을 맞대고 질문을 던지면 ‘관찰자의 역설’이 발생한다. 녹음기를 들이밀면 면담자는 갑자기 격식을 차린 말로 답하기 시작한다.

[책마을] 언어 달라도 '이모지'로 통하는 인터넷세상
30여 년 전 상용화된 인터넷은 언어학자에게 구어 연구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네티즌들은 말하는 것처럼 글을 썼다. 글쓴이가 어느 지역에 사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언어학자들은 ‘엄청’을 뜻하는 비속어 ‘hella’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너희’를 뜻하는 ‘yinz’는 피츠버그에서 주로 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터넷 이전의 언어생활이 반영되는 흔적도 보인다. 말줄임표(…)와 느낌표(!!) 등 문장부호를 과하게 쓰는 것을 한국에선 ‘휴먼아재체’라고 놀리듯 말한다. 이는 해외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런 특징의 원천은 엽서다. 1950~2010년 500통 이상의 엽서를 분석한 결과 ???, !!! 같은 문장부호의 반복 사용이나 웃는 얼굴과 하트 등 이모티콘과 비슷한 낙서가 많이 보였다. 엽서와 편지, 일기 등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인터넷에도 ‘엔터’를 쳐서 줄을 띄우는 대신 말줄임표로 생각의 단위를 구분했다.

기술은 대화 방식도 바꾼다. ‘여보세요(hello)’는 전화기와 함께 탄생한 인사말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제안했다. 누가 어느 시간대에 받았는지 알 수 없는 전화로는 ‘좋은 오후입니다, 선생님’ 같은 인사를 건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hello’가 입에 붙자 전화를 넘어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인사말로도 빠르게 번져나갔다. 인터넷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종이 편지에서 쓰던 ‘친애하는 데이비드에게(Dear David)’ 대신 ‘데이비드에게(David)’나 ‘안녕하세요, 데이비드(Hi, David)’로 바뀌었다. 채팅은 아예 인사말이 필요 없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속도가 중요하다. 완벽한 메시지를 작문하느라 시간을 들이기보다 그냥 무슨 말이든 내놓는 게 낫다.

인터넷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이모지’다. 이모지는 기호, 숫자 등을 조합하는 이모티콘과 달리 하나의 그림 형태로 감정을 표현한다. 이모지에는 미소를 짓거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비롯해 동물, 음식, 자연, 물건 등 수천 종류가 있다. 이모지는 어깨 으쓱하기, 눈알 굴리기, 윙크 등 몸짓으로 하는 표현을 대신한다. 학자들은 이런 동작을 ‘엠블럼’이라고 부른다.

이모티콘이나 움직이는 그림 파일(gif)이 있는데 왜 이모지가 널리 쓰일까. 이모티콘은 키보드에 이미 있는 문장부호로 만들 수 있다. 입력하기가 대단히 쉽다. 하지만 이모티콘에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gif는 가끔은 재미있지만 자주 쓰기엔 번거로웠다. 저자는 “이모지는 그 둘 사이의 만족스러운 균형점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모지가 언어가 아니라서 성공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인간의 몸짓과 신체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널리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모지가 한때의 유행일 수 있지만 “디지털 신체 자체는 계속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언어가 빠르게 변하는 이유를 ‘약한 유대’에서 찾는다. 그는 “낯선 사람과 자주 교류할 때 언어가 빨리 변한다”며 “언어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강한 유대를 통해서만 공유된다면 결국 ‘내부자들의 농담’으로 끝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