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이 항상 열려 있기를》(E. E. 커밍스 시선집 1)
《내 심장이 항상 열려 있기를》(E. E. 커밍스 시선집 1)
20세기 미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 E. E. 커밍스(1894-1962)의 시집이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문학전문출판사인 미행이 지난 20일 펴낸 《내 심장이 항상 열려 있기》과 《세상이 더 푸르러진다면》이다. 커밍스가 말년인 1960년 자신의 시집에서 직접 골라낸 대표 시선집이다.

약 2900편의 시와 2편의 자전적 소설, 4편의 희곡, 여러 수필을 남긴 커밍스는 독특한 시인이다. 그는 언어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띄어쓰기나 문장부호를 제멋대로 사용하거나 대문자를 써야 할 곳에 소문자를 쓰는 등 문법 규칙을 자주 무시했다.

단어를 마음대로 조합해 합성어를 만들었고, 의문사를 명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장치들은 다양한 효과를 낸다. 가령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호흡을 가쁘게 한다.

‘버펄로 빌의(buffalo bill's)’이란 시에서 커밍스는 ‘하나둘셋넷다섯마리(onetwothreefourfive)’라고 표현했는데, 버펄로 빌이 비둘기를 빠르게 사냥하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커밍스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읽힌 시인이다. 시가 난해하기만 했다면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서정시인이었다. 커밍스의 시는 사랑, 어린 시절, 꽃과 나무 등 전통적인 주제를 다룬다. 최고의 연애 시인이라고도 불렸다. ‘사랑은 망각보다 두텁고’라는 시에서 그는 ‘사랑은 망각보다 두텁고/기억보다 얄팍하며/젖은 파도보다 드물고/실패보다 빈번하다’고 노래했다.

《세상이 더 푸르러진다면》(E. E. 커밍스 시선집 2)
《세상이 더 푸르러진다면》(E. E. 커밍스 시선집 2)
커밍스는 상류사회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했다. 전통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편 권위와 인습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개성의 가치와 자립정신을 강조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사랑과 자연 등 낭만주의 문학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모더니즘 문학의 실험적 언어와 형식을 따르는 독특한 시가 탄생할 수 있었다.

《내 심장이 항상 열려 있기를》에는 커밍스의 초기 시 46편이, 《세상이 더 푸르러진다면》에는 후기 시 52편이 실렸다.

미행 출판사 관계자는 “커밍스는 20세기 영미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번역의 까다로움 때문에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었다”며 “그의 대표 시를 모은 이번 시선집이 커밍스의 시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