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100쇄 기념 개정판…"그때와 지금의 내가 공동 작업"
"시대성 살리되 비하 표현 고쳐"…차기작은 인간 유한함 성찰하는 장편
은희경 "'새의 선물'은 빛이자 그림자…난 언제나 현재의 작가"
"'새의 선물'은 제게 멀고도 환한 빛이자, 길고도 희미한 그림자란 생각을 했어요.

"
동시대 작가로 불리는 은희경(63)이 1995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자 첫 장편 소설 '새의 선물' 100쇄를 맞아 내놓은 소회다.

은 작가는 3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개정판 출간 간담회에서 "이 책 덕분에 작가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15권의 책을 내면서도 많은 분이 대표작으로 꼽아 제 발밑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느낌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27년에 걸쳐 100쇄가 된 건 각별한 의미"라며 "이 시간 동안 제가 소설을 통해 던진 질문에 꾸준히 공감해준 독자들은 작가에게 굉장히 큰 배후세력이다.

독자들은 27년 동안 제가 글을 쓰는 힘"이라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은 작가는 이번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처음으로 소설 전체를 다시 읽어봤다고 했다.

그는 "이때는 필터가 많지 않아 어떤 독자나 평론가를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에만 집중해 저와 글과의 완전한 독대였다.

에너지 집중도가 높았다"고 떠올렸다.

개정판에서는 전반적인 뼈대는 바꾼 게 없지만 앉은뱅이책상, 벙어리 장갑, 곰보 아줌마 등 장애인이나 여성 비하 단어와 지금 정서에 맞지 않는 표현을 바꿨다.

"1990년대에는 이런 말을 함부로 타인에게 했구나.

지금 사회가 좀 더 좋아져서 이런 걸 바꿀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소설 속 할머니의 욕설은 빼지 않았다"며 "시대성을 살리기 위해 어디까지 고쳐야 할지는 정밀한(정밀함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작가는 그 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가 감추고 싶은 비루한 모습은 포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7년 전과 지금의 제가 공동 작업을 해 개정판은 누구에게 선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쁜 마음"이라고 했다.

은희경 "'새의 선물'은 빛이자 그림자…난 언제나 현재의 작가"
1960년대 전북 고창을 배경으로 한 '새의 선물'은 30대 중반의 주인공이 부모 없이 자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을 회상하는 구조의 성장 소설이다.

세상을 다 알아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조숙한 12세 소녀 진희의 시선을 통해 살림집과 가게채로 이뤄진 '감나무집'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보다 철이 없는 영옥 이모, 남을 험담하기 좋아하는 장군이 엄마, 허랑방탕하고 허세 가득한 '광진테라 아저씨' 등 생생한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진희의 시선에 비친 인물 군상을 통해 작가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대 속 여성 문제, 계급 문제, 군사 독재가 일상생활에 침투한 과정 등을 꼬집는다.

작가는 당시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자 어린 주인공의 냉소적이고 독기 어린 태도가 필요했다고 한다.

은 작가는 "우리가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으로 주저앉힌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다"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부조리함이 유효하다고 느낀다.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나, 고유하게 개인의 생각 속에 살 권리 등이 아직 제가 계속 질문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로서의 첫 출발 지점과 출간 당시 기억을 떠올려봤다고 한다.

36세이던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당선된 그는 이후 자신의 인생에 별다른 변화가 없자 장편을 써보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며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는 어머니가 소개해준 해발 1천 미터 고지 외딴 절에 틀어박혀 집필에 전념했다.

그는 "산짐승이 울어도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정말 재미있게 썼다"며 "나 스스로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이렇게 강한 건 처음이었다.

간절함이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얘기를 생생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12살 무렵으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1995년 당시 사람들의 현재가 어디서 통제받고 왜곡됐는지 그 지점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 성장소설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은희경 "'새의 선물'은 빛이자 그림자…난 언제나 현재의 작가"
문학동네소설상 응모 당시 제목은 '연애 대위법'이었으나, 출간 막바지까지 고민해 자크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당시 이 책은 트렌디한 이야기도,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어서 상업적 매력은 그다지 없는 책이었다.

은 작가는 "칼국숫집 축하 자리에서 출판사 대표님이 10만 부가 팔리면 차를 사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은 편집위원이 크게 웃었다"며 "그런데 그해 차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 책이 100쇄가 됐다고 생각하니 많은 고마운 분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 때 소설을 쓰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천진하게 얘기했다"며 "그런데 딱 한 번 오는 '문운'이었다.

새의 선물은 많은 문운을 가져다줬다"며 웃었다.

은 작가는 차기작으로 쇠퇴하고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유한함을 성찰하게 만드는 몸에 대한 장편을 준비 중이다.

그는 "몸은 인간의 조건이고,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고, 세상이 나를 평가하고 왜곡하는 오해의 출발점"이라며 "용기에 대한 단편 소설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 시각을 유지한다는 자신에 대한 평에 "난 현재의 작가"라며 지금 사는 세상으로부터 이야기를 포착하고 지금 사람을 상대하며 지금의 문제를 본다.

웹툰이나 넷플릭스 등 OTT도 보는데, 이렇게 많은 콘텐츠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한다"고 작가로서 태도를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