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질'로 한국 애니 최초 칸영화제 단편경쟁 진출…'사회적 가면' 풍자
문수진 감독 "알바 가는 길에 초청 전화…'그 칸이요?' 물었죠"
"아르바이트 가려고 나서는데, 배급사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칸영화제에 가게 됐다고 하길래, '네? 제가 아는 그 칸이요?' 했죠."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만난 문수진 감독은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가 만든 '각질'은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칸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올해 이 부문에 출품된 작품은 총 3천여 편으로, 단 9편만 칸의 선택을 받았다.

'각질'은 문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낸 애니메이션이다.

러닝타임이 6분에 불과하지만, 장장 1년을 기획해 완성했다.

작품은 젊은 여자 주인공이 집에 들어와 흡사 인형 탈처럼 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벗어 꼼꼼히 빨래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밖에 나갈 때마다 이 가면을 쓰고, 집에 와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차게 잘 행동했는지를 점검한다.

문 감독은 "평소에 늘 하던 생각과 실제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스스로에 자신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내 모습은 뭘까 생각하다가 밝은 모습의 저를 만들어냈죠. 하지만 갈수록 진짜 제 모습과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우울감도 커졌습니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졸업작품으로 이 감정을 배출해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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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진 감독 "알바 가는 길에 초청 전화…'그 칸이요?' 물었죠"
한국 제목으로 '각질'을 붙인 이유는 사회적 자아의 특성이 각질과 닮았다는 생각에서다.

문 감독은 "각질은 사람의 전신을 감싸고 있지만 이미 죽은 피부, 곧 떨어져 나가는 무언가"라고 말했다.

"쉽게 뜯겨 나가는 각질처럼, 사회적 자아 역시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놓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누군지 분명히 알고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것에 집착해서 본인을 잃어가는 '내몰림'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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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주인공이 입는 각질은 일본의 순정만화처럼 그려졌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눈과 긴 속눈썹, 마른 몸매까지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외모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했다.

문 감독은 "어느 날 문득 순정만화가 동양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극대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괴하거나 어색하다고 느껴야 하는 건데, 사람들은 오히려 귀엽고 예쁘다고 인식하잖아요.

제가 말하고 싶던 주제인 각질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런 그림체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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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진 감독 "알바 가는 길에 초청 전화…'그 칸이요?' 물었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문 감독은 이후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한예종 애니메이션과까지 진학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밟아왔다.

칸의 깜짝 초청에 수상을 기대할 법도 하지만, 문 감독은 "너무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에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이 아이(작품)의 존재가 전혀 위협받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작품을 기획하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프로'로 활약하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하지만 '각질'을 준비하며 내면적으로 도움받은 게 너무 크기 때문에, 창작과 저는 딱 이 정도의 관계만 유지하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으로 돈을 꼭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일단 안정된 생활 기반을 가진 다음에 마음껏 창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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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