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우들이 단역으로…연극 '햄릿'이 돌아온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무대에 전무송, 박정자, 유인촌 등 국내 연극계에서 한가닥하는 원로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선배 배우들이 조연과 단역을 맡고 후배들이 주연을 맡는 '무대 위 세대 교체'가 이뤄질 예정이다. 연극계에서 보기 드문 '대작'이기도 하다.

25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박명성 프로듀서는 "후배 연기자를 위해 대선배들이 빛나는 조연과 단역으로 물러서 줌으로써 배우 선후배 세대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며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빈사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공연계를 위해 작은 역으로라도 흔쾌히 참여해 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햄릿'은 400여년 전 쓰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다. 덴마크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지금까지도 전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재해석·재창조되고 있는 고전이다.

국내에서 앞서 2016년 무대를 올린 '햄릿'은 당시 연극배우 겸 연출가 고(故)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해랑 연극상을 받은 국내 연극계 원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됐다. 객석점유율 100%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시즌 출연한 배우 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유인촌·윤석화·손봉숙과 더불어 권성덕 등 대(大)배우 9명이 이번 시즌 총출동한다.

이번 공연의 특이한 점은 원로배우들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주연 자리에서 물러나 '클로디어스'부터 '유령', '무덤파기', '배우1~4' 등 작품 곳곳에서 조연과 앙상블로 활약할 예정이다.

이중 배우 유인촌은 지금껏 주인공 '햄릿'을 여섯번이나 연기한 이른바 '햄릿 전문가'지만, 이번 시즌에선 햄릿의 비정한 숙부 '클로디어스'역을 맡아 햄릿의 대척점에 선다. 지난 시즌 '클로디어스'로 분한 정동환은 이번엔 모사꾼 '폴로니우스'와 '무덤파기1' 역을 맡아 감초 역할을 할 예정이다. 그밖에 박정자, 손숙, 윤석화, 손봉숙은 각각 유랑극단의 배우 1, 2, 3, 4로 무대에 오른다.

이 밖에 권성덕은 '무덤파기2'와 '사제'역, 전무송은 "나를 잊지 마라"는 명대사를 남기는 죽음의 복선 '유령' 역으로 분한다.

전무송은 "연극 '햄릿'은 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운이 좋게도 이번에 네번째로 햄릿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엔 '유령' 역할을 맡았는데,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 햄릿 무대에 여러 번 오르게 돼 영광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 권성덕은 "가장 좋은 역할인 '무덤파기' 역할을 맡았다"며 "젊은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돼 기쁘고, 동시대에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배우들이 모일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대배우들이 단역으로…연극 '햄릿'이 돌아온다
반대로 젊은 후배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다. 주인공 '햄릿'은 뮤지컬과 연극 등에서 활약 중인 배우 강필석이 맡는다. 강필석은 "대선배들과 대사를 섞고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6년 전 지난 시즌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무대보다 긴장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밖에 박건형과 김수현이 각각 '레어티즈'와 '호레이쇼'로 분해 관객을 맞는다. 김명기와 이호철은 햄릿의 친구 '길덴스턴', '로젠크란츠' 등 젊고 기동력이 필요한 역할을 맡는다.

지난 공연에 이어 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고전은 통시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번 공연은 현대인의 심리로 햄릿을 해석하려고 한다"며 "특히 배우들에게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7월13일부터 8월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