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박모씨는 재택근무 기간 새벽배송으로 조달한 가정간편식(HMR) 덕을 톡톡히 봤다. 박씨는 "남편과 함께 재택근무를 한 데다 아이 재택수업까지 겹쳐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국과 밥뿐 아니라 다양한 메뉴를 매일 아침 문 앞에 배송받을 수 있어 안심하고 식단을 정할 수 있었다"며 웃어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가정간편식 시장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새벽배송이었다.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으로 처음 선보인 새벽배송은 코로나19 시대 소비자들의 손발이 됐다. 새벽배송 시장이 확실한 입지를 굳히면서 간편식 시장은 한층 다양해지고 판이 커졌다.

새벽배송 만나 판 커진 온라인 식품 시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새벽배송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의 온라인 식품 구매는 급성장했다.

새벽배송은 2015년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이란 이름으로 선보이며 유통가로 확산했다. 전날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신선식품을 배송해주는 샛별배송 서비스에 소비자들이 즉각 반응했다. 익일 배송이 주력이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공룡 쿠팡과 오프라인 업계 강자 이마트 등 기존 유통 강자도 새벽배송을 선보이며 시장 확대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온라인 먹거리 시장도 팽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음·식품료품 거래액은 24조8568억원으로 전년(2020년)보다 26.3% 뛰었다. 2017년(7조8410억원)의 3배가 넘는 수준으로 급성장한 것. 업계에선 HMR과 밀키트 시장이 2017년 이후 매년 평균 두자릿수 성장을 기록해 지난해 4조4000억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자료=농림축산식품부
자료=농림축산식품부

파인다이닝부터 고급디저트까지 간편식 '봇물'

사진=컬리
사진=컬리
시장이 쑥쑥 크자 간편식 제품도 다양해졌다. 전국 각지의 맛집들이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어 기회를 잡았다. 컬리를 발판으로 전국구로 이름을 알린 부산의 한정식 전문점 '사미헌'과 서울 청담동 이탈리안 한식 파인다이닝 '쵸이닷', 부산 빵집 '겐츠베이커리'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사미헌은 보석점을 운영하던 홍성복 대표가 백화점 주변 상권 입지를 활용해 선보인 한정식 전문점이다. 소고기가 주력으로 점심시간에 갈비탕을 먹으려는 고객 대기줄이 늘어설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홍 대표는 추가 매출 성장에 대한 고민 끝에 온라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사미헌은 2015년 즉석판매제조가공 허가를 받아 주방에서 만든 갈비탕을 급랭, 홈페이지와 전화 주문을 받았다. 주문이 빗발쳐 부산 기장에 일반식품제조에 적합한 별도 생산시설까지 지었다. 그 결과 하루 최대 2000팩까지 생산 가능한 체제를 구축했으나 유통이 고민이었다.

상품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전국 각 지역으로 배송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미헌은 2018년 마켓컬리를 만났다. 당장 팔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온라인 유통 품질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약 1년간이나 이어졌다. 마켓컬리 리스크 매니지먼트 팀은 수차례 생산시설을 방문해 개선점을 제시했다. 까다로운 매뉴얼을 만들고 패키징 등 제품 개선을 거친 끝에 '대박'이 났다.

월간 판매량은 첫 달 1279개에서 6개월 만에 2만여 개로 20배나 뛰었다. 지난해 11월에는 11만5431개를 팔아 월간 판매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생산시설도 하루 최대 2만5000팩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키웠다.
사진=컬리
사진=컬리
요리와 방송을 넘나드는 셰프테이너 최현석 셰프의 '쵸이닷'도 새벽배송을 만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디너 코스에 20만원이 넘는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만큼 소비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보완한 사례다.

최 셰프는 누구나 손쉽게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고민한 끝에 간편식을 대안으로 택했다.

좋은 식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효과적 조리법을 유지하면서 다른 부분의 비용을 낮춰 대량 생산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최 셰프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은 간편식을 염두에 뒀다. 냉동 파스타의 건면 대신 고객에게 생면 파스타의 식감과 문화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첫 제품으로 '쵸이닷 새우 봉골레 파스타'를 선보이게 됐다는 후문이다. 파스타는 출시 10일 만에 1차 입고 분량이 모두 소진됐다.

디저트도 간편식 흐름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숨겨진 지역 빵집을 새벽배송으로 맛보는 재미를 소비자들이 누리게 됐다.
사진=컬리
사진=컬리
베이커리가 많아 '빵천동'이라고 불리는 부산 남천동 인근에 자리잡은 겐츠베이커리도 지난해 컬리에서 활약한 브랜드다. 2002년 문을 연 겐츠베이커리는 모험적 메뉴로 이름을 알렸다. 치킨을 튀긴 후 알싸한 맛의 소스로 버무려 패티로 만든 '내슈빌치킨버거'와 러스크에 시즈닝을 넣어 섞어 먹는 '써까바' 등이 인기다.

지역에서 입소문을 탄 겐츠베이커리는 전국 유통을 위해 자사 쇼핑몰을 구축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마켓컬리에 입점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겐츠베이커리는 마켓컬리 입점 후 6개월간 온라인 매출이 23배 넘게 급증했다.

베이커리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배송 온도 관리가 필수다. 새벽배송 업체들이 냉장시설을 완비한 유통망 구축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컬리는 모든 과정에서 온도를 유지하는 '풀콜드체인 유통'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겐츠베이커리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겐츠베이커리를 알게 된 사람들이 부산 방문 시 실제 매장을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