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블루소극장서 헌정공연 '질투' 출연…극작가 이만희가 헌정
81세에도 매일 세 시간 맹연습…"연습 끝나면 한잔, 체력 아직 괜찮아"
'무대인생 60년' 이호재 "연극배우는 늙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
어느덧 여든을 넘긴 배우 이호재(81)가 무대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무대에 오른다.

오는 27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개막하는 '질투'(극 이만희, 연출 최용훈)는 이혼 후 비닐하우스 사무실에서 혼자 살면서 사업을 하는 '완규'(이호재)를 중심으로 친구인 '춘산'(남명렬)'과 동네 약국 약사인 '수정'(남기애)이 펼치는 황혼의 로맨스를 그린 연극이다.

휘문고 후배이자 그동안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온 극작가 이만희가 이호재의 연기 인생 60년 기념극으로 헌정한 신작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 있는 한 치열하게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원로'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매일 리허설하고 동료, 후배, 팬들과 자주 술자리를 하며 연극 얘기를 즐긴다는 이호재를 지난 4일 대학로 예술청에서 만났다.

영화나 TV 드라마와 달리 '순간의 예술'인 연극에서 한 회도 그 전과 똑같은 공연은 없다고 강조한 그는 "이번 공연도 꼭 와서 그 순간을 함께 해달라"며 관객들을 초대했다.

-- '질투' 리허설은 많이 하고 계신가.

▲ 주 1회만 쉬고 매일 저녁 연습한다.

어떤 학자는 하루에 사람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매일 세 시간 집중해 리허설한다.

작품도 80분 정도로 짧은 데다 최영훈 연출이 연습을 세 시간 넘기지 않게 각별히 신경을 쓴다.

-- 이번 공연 이전에도 '불 좀 꺼주세요', '언덕을 넘어서 가자',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 이만희 작품 다수를 함께 했는데, 특징이 있다면.
▲ 쉽게 와닿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부분을 아주 잘 짚어낸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 바탕이 아주 튼튼하다.

이만희가 불교를 깊이 있게 공부했기 때문일까.

세계관이 아주 단단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 이번 작품 '질투'는 어떤가.

▲ 작품 자체는 재밌는데 연극으로 형상화하다 보면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만희의 작품을 보면 재치가 있고 작품의 깊이도 있다.

좋은 점이 많지만, 연기자가 무대에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최용훈 연출이 작품이 가진 매력을 교묘하게 잘 살려냈다.

같이 출연한 남명렬, 남기애도 수십 년간 무대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베테랑들이고. 아마 관객들이 기대하시는 만큼 좋은 연극이 될 것이다.

(이번에 함께 출연하는 남기애는 이호재가 출연했던 tvN 인기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그의 부인으로 함께 연기했다)
'무대인생 60년' 이호재 "연극배우는 늙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
-- 벌써 연기 인생 60년이다.

데뷔작이 1963년 명동국립극장에서 한 '생쥐와 인간'(존 스타인벡 원작)의 '레니 스몰' 역할이었는데, 그때가 기억나나.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연극이란 게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

친구들 따라서 우리끼리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거다' 하면서 했다.

그 당시엔 지금과 달리 다 친구끼리 어울려서 연극하는 동인극단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모르고 친구들도 모르니까 그냥 한 거지. 그렇게 해서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는데, 자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나고, 연극이 어려웠다든지 하는 건 없었고 그저 즐겁게 했던 기억만 있다.

-- 애주가이자 애연가인데, 체력에는 문제없나.

▲ 연극을 하면 술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연습할 때는 상대역이 있으니 자기가 하고 싶은 연기를 다 하고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습이 끝나면 아쉽지. 그래서 연습 끝나고 또 모여서 한잔하면서 다시 연극 얘기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얻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우러지면서 자극도 얻고 그러는 거지.
담배는 뭐 담배를 끊든지 연기를 그만두든지 해야지(웃음) 아직은 그럭저럭 몸이 잘 버틴다.

(기자가 이제 금연하실 때가 되지 않았냐고 하자 인터뷰에 동석한 정혜영 극단 컬티즌 대표는 "얼마 전 신구 선생이 입원하셨을 때 원로배우 오현경 선생이 이호재 선생께 전화를 걸어 술 줄이고 담배 끊으라고 채근하시더라"라고 거들었다.

이호재의 오랜 팬클럽 이름은 '빨간 소주'다.

)
-- 관객이나 후배들에게 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요즘 연극하는 젊은 배우 중에도 나를 잘 모르는 후배들이 있는데, 어느 때는 그게 섭섭하기도 하더라.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한 시대를 같이 무대에 서는 사람인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잘 모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연극은 작가에겐 작품(희곡)이 남지만 배우는 공연 끝나면 남는 게 없다.

같은 배우라 해도 영화배우나 탤런트들은 영상으로 남아 수십 년이 지나도 영상을 돌려보며 추억할 수 있는데 연극은 그 순간이 지나면 없는 거다.

노사연의 노래 가사 중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게 있다.

나는 그걸 이렇게 바꿔 부른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사라지는 겁니다'라고. 배우는 특히 그렇다.

열 번을 공연하면 열 번 모두 다르고 똑같은 공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을 함께한 관객과 배우들의 기억에만 영원히 남는 거지. 한번 지나가면 다시없을 이번 공연, 많이들 와서 보셨으면 한다.

(웃음)
'무대인생 60년' 이호재 "연극배우는 늙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