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 뉴스1
“며칠 후 가격이 오를 예정입니다. 인상 전 미리 결제하셔도 앞으로 인상될 가격을 내셔야 합니다.”

직장인 박제든 씨(39)는 지난달 한 백화점에 있는 프랑스 명품 주얼리·시계 브랜드 까르띠에 매장에 갔다가 이처럼 황당한 안내를 받았다. 박 씨는 사고 싶은 시계줄이 모두 판매돼 재고가 없는 상태라 미리 제품 값을 지불하고 웨이팅(구매 대기)을 걸었다.

그런데 제품을 수령할 시점엔 가격이 인상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오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것이다. 결제한 시점은 가격 인상이 안 됐으며, 제품을 수령할 시점엔 값이 오를 것으로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닌데 차액을 요구한 셈이다.

박 씨는 “매장에 제품이 없어서 못 받은 건데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가격표에도 기재되지 않은 비용으로 결제하라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면서 “몇 차례씩 가격을 올려도 고객이 몰리니 ‘배째라’ 식 갑질 영업을 하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수 차례 반복되는 가격 인상과 무책임한 사후서비스(AS)로 질타를 받고 있는 명품업계가 이번엔 ‘고무줄 가격’ 논란을 빚고 있다. 오는 9일 인상을 앞두고 물건 값을 미리 결제하고 구매 예약을 건 고객 중 일부에게 인상 후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 같은 제품이라도 고객별로 다른 가격을 매겨 팔고 있는 셈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까르띠에는 오는 9일부터 시계와 액세서리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최대 15%가량 인상할 예정이다. 300만원대로 비교적 까르띠에 브랜드 내에선 가격대가 낮은 편인 ‘입문 아이템’ 탱크머스트 등의 인상폭이 클 것으로 알려졌다.

까르띠에 인상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달 말부터 각 백화점 까르띠에 매장에선 제품은 없지만 물건 값을 결제하는 고객들로 넘쳐났다. 인터넷 명품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곧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리 값을 지불하고 웨이팅(구매 대기)을 걸어놓으려는 고객들이 몰린 것이다. 이른바 ‘완불 웨이팅’을 진행한 셈인데 당장 물건을 못 사더라도 미리 결제해놓으면 가격이 인상된다 해도 기존 가격에 제품을 받는 이점이 있다.
서울 한 백화점의 까르띠에 매장 전경. 뉴스1
서울 한 백화점의 까르띠에 매장 전경. 뉴스1
문제는 일부 매장에서 가격 인상 전에마저 제품을 구매하고 완불한 웨이팅 고객에게 미리 인상분을 반영한 차액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까르띠에 매장에서 시계와 시계줄을 구매한 소비자 김모 씨(35)는 “비슷한 시기에 다른 매장에서 동일한 제품을 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더 비싼 금액으로 결제된 점을 발견하고 구매처에 문의했다”며 “매장에서는 물건 입고가 2~3개월은 걸릴 것으로 봐 제품을 받는 시점엔 값이 오를 수 있어 인상 후 가격으로 결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야기를 듣고 하도 황당해 결제 시점에 가격이 오르지 않았고 수령 시점이 인상 후로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항의했다.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인상 전 가격으로 재결제 해주더라”면서 “이런 식이면 고객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매장별 상황은 다르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제품을 구매한 윤모 씨(34)는 “탱크머스트 소가죽 줄을 사면서 20만5000원을 결제했는데 그 와중에 인상 소식을 문의했더니 매장에선 당연히 결제 시점 가격을 적용 받는다고 안내했다”고 전했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매장마다 웨이팅 현황 및 재고 수량 등이 달라 결제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같은 브랜드라도 매장마다 다른 가격정책을 쓴다는 얘기다.
까르띠에는 오는 9일 예정된 가격 인상 사실을 일부 VIP에게만 개별 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혜원 기자
까르띠에는 오는 9일 예정된 가격 인상 사실을 일부 VIP에게만 개별 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혜원 기자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는 점도 비판 받고 있다. 까르띠에는 이번 가격 인상 사실을 일부 VIP에게만 개별 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VIP에게 인상 소식을 미리 공지해온 게 드러나면서 논란을 빚고 있지만 올해도 같은 방식의 판매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소수 고객에게 가격 인상 계획을 귀띔해 누군가 이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면 알음알음 인상 폭과 제품을 유추해나가는 식이다. 정보를 유추해나가는 과정에서 소문이 나게 만든 뒤 ‘오르기 전에 사두자’는 심리를 자극하는 상술을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달 초 까르띠에 오픈런을 한 박돈 씨(37)는 “일부 고객에게 인상 계획이 공지됐다는 내용을 온라인 명품 카페에서 보고 갔는데도 매장에서 문의하니 하루 전에도 가격 정책을 알 수 없다며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며 “결국 어떤 제품이 오를지, 반대로 내릴지 가늠이 안돼 몇 시간 줄을 서고도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VIP들은 이미 가격 변동 여부는 물론이고 얼마나 오르거나 내릴지도 알고 있더라”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