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류'로 문화강국 만드는 게 이 시대의 호국불교" [인터뷰]
“나는 부딪히는 걸 피합니다. 어떻게 보면 좀 비겁하다고 할 정도로 안 부딪힙니다. 왜냐, 그렇게까지 충돌해가면서 할 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의견이 안 맞을 땐 부딪히고 싸울 일도 많았지만 난 젊을 때에도 안 싸웠어요. 내가 좀 비겁해 보이면 되지요. 그걸 참기 힘들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손오공이 아무리 뛰고 날아도 부처님 손바닥 안인데 싸워봐야 얼마나 가겠어요? 멀리 넓게 보면 다 같은 손 안에 있으니까요. 부딪히고 싸우고 이기려고 하는 게 힘들지 참는 건 힘들지 않습니다. 하하."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83)의 안심(安心) 법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8일)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의 산중 작업실에서 성파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평생 살면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한마디가 뭐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날마다 벌어지는 여야 의원들의 다툼에 대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들이 보고 배울까봐 걱정"이라며 "자중지란(自中之亂)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역사가 그렇다"고 우려했다.

▷종정 임기를 시작한 지 한달 정도 됐는데 요즘 일과는 어떠신지요?

"지내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찾아오는 분들은 좀 늘었습니다만, 나한테만 특별히 하루를 30시간으로 늘려주는 게 아니니까 시간을 쪼개서 씁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공양하고 사중(寺中)에 대중이 많으니 스님들도 좀 만나고, 주지 스님한테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일정이 잡혀 있으면 참여하고, 그렇지 않으면 작업실에 올라옵니다."

▷종정이 되신 후에 달라진 게 있습니까.

"종정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나 안 붙었을 때나 같습니다. 종단의 공식 행사나 공식 일정에서는 종정으로서 걸맞은 언행을 해야겠지만 그 외에는 종정이라는 고삐나 굴레가 싫습니다. 평소 생활하는 그대로 사는 것이지 특별히 격식을 차리고 싶지 않아요. 부처님 오신날 법어도 평소 생각하던 걸 말하는 거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사진=김병언 기자
사진=김병언 기자
▷작업실 앞에 차가 많아서 좀 놀랐습니다.

“여기서 차문화대학원을 하고 있는 데다 오늘은 옻칠문화 수업이 있는 날이라 그렇습니다. 또 여기에 영남알프스야생버섯연구소가 있습니다. 울산대 최석철 교수가 10여년 전부터 야생 버섯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는데 작년에 정년퇴임한 후에 여기에 사무실을 내줬습니다."

성파 스님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해인사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5학년때 6.25전쟁이 터졌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게 되자 서당에서 명심보감과 사서삼경 등의 한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마음의 실체가 궁금해 1960년 통도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1915~2003)이 은사다.

▷예전에 월하 스님도 평상심이 도(道)라는 걸 많이 강조하셨는데, 은사 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듯합니다.

"은사 스님의 영향이 어떤가 하면, 여무로중행(如霧露中行·안개속에 가는 것과 같아서)하여 수불습의(雖不濕衣·옷이 소나기 맞은 것처럼 젖지는 않더라도)라도 시시유윤(時時有潤·때때로 옷이 꿉꿉해진다)이라. 은사 스님은 이렇다 저렇다 (콕 집어서)말씀을 안 하시는 분이어서 특별한 교육을 안 시키더라도 평소 하시는 말씀 그대로 내 몸에 배인 것이죠."

▷은사 스님은 "중노릇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하셨다지요. 스님께서는 뭘 강조하십니까.

"80대인 나나 20대 청년이나 모두 동시대인인데 요새 젊은 사람들 사고방식을 우리는 잘 몰라요. 그래서 남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을 잘 안 합니다. 알아서 하도록 하지 채찍질은 안 해요. 나부터 잘하면 내가 움직이는 것, 활동하는 걸 보고 조금이라도 따라 하려면 하는 거고요. "

▷젊을 때 전국 선방을 다니며 참선도 오래 하셨는데요. 간화선(화두선)이 현대에도 유용한가요?

"간화선은 어렵다고 하는데 세상에 아무리 쉬운 것도 모르면 어렵고, 아무리 어려운 것도 알면 쉽습니다. 간화선을 몰라서 어려운 겁니다. 옛날 선사들이 여러 수행 경험과 지도하는 방법, 경험 등을 종합해서 최고로 좋고 간단하고 쉽게 만든 게 간화선입니다."

▷절집에서는 참선을 오래 해야 높이 평가해주는 풍조가 있었는데 꼭 그래야 할까요.

"참선을 위해 오래 앉아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우선 육신을 조복(調伏·몸과 마음을 고르게 하여 여러 가지 악행을 굴복시킴)받아야 해요. 그렇잖으면 힘듭니다. 일반인은 하루 앉아있기도 힘든데 그걸 한평생 한다는 건 공부가 됐든 안됐든 그 나름대로 높이 평가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모두라고 (수행자가)생각하면 그 사람이 잘못이죠. 오래 수행해서 칭찬을 받을만 한지 아닌지는 수행자의 몫인 겁니다."

▷종정이 되셔서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셨을 거 같습니다.

"그렇지요. 어떤 종정이 되겠다고 특별히 마음 먹거나 계획한 건 없습니다만, 역사를 많이 공부해서 지금이 어떤 시점인지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종정과 2022년의 종정은 다르거든요. 진리는 같지만 모든 현상에는 변화가 있기 때문에 옛날 일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됩니다. 봄인데 가을 일을 하고, 여름인데 겨울 일을 해서 되겠습니까. 역사와 시대의식에 깨어있지 않으면 살아있더도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어요. 지금은 탈종교 시대라 출가자가 급감하고 있는데, 1마력의 힘으로 10마력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기든 인공지능(AI)이든 힘을 빌려야 하고, 물질이든 정신이든 훨씬 더 집중해서 에너지를 모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최소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성파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파 스님은 수행자인 동시에 예술가다. 서예는 물론 그림, 옻칠, 도자기, 염색, 한지 제작 등 다방면으로 예술활동을 펼치며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앞장서왔다. 옻칠민화라는 새 영역도 개척했다. 가히 선예(禪藝) 일치의 경지다. 아파트 문화 확산과 함께 버려진 옹기를 5000여점 모아서 된장을 비롯한 전통 장류를 제조해 보급해왔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도자기판에 써서 구운 16만 도자대장경과 장경각을 10여년에 걸쳐 조성했다. 지난해부터는 울주 반구대암각화를 실물 크기의 나전옻칠로 제작한 작품을 장경각 앞 수조에 담가 선보이고 있다. 폭 3m, 길이 24m의 초대형 한지에 옻칠불화를 그리는 역작도 구상 중이다.

▷전통문화 보존, 발전에 힘쓰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 승려들은 전통문화의 보고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삶 자체가 전퉁문화입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지키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겁니다. 그게 이 시대의 호국불교입니다. 임진왜란 때 창칼을 들고 일어선 것처럼 스님들이 전통문화로 무장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게 호국이라는 말입니다."

▷밭은 매든 전통문화를 하든 그 모든 게 수행이라는 걸 언제 느끼셨습니까.

“그건 좀 오래 됐어요. 출가 초기부터 그런 정신으로 살았어요. 출가 후 처음에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에 '사음수성독(蛇飮水成毒·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우음수성유(牛飮水成乳·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라는 말이 있어요. 바로 그겁니다. 수행자에겐 그림을 그리든, 밭을 매든 그 모든 게 수행인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에 통도사를 방문했을 땐 무슨 말씀을 들려주셨습니까.

"정치, 경제, 군사 등은 대통령이 하실 일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 되는 거라고 했습니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건 현대 한류인데, 역사적인 전통 한류가 개발이 안 돼 있어요. 전통문화를 개발하면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윤 당선인이 아주 긍정하더군요."

▷곧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면 통도사 옆으로 이사를 오니 이웃사촌이 됩니다. 덕담을 한마디 해주시죠.

"멀리 있는 물로는 가까운 불을 끌 수 없고(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멀리 사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遠親不如近隣·원친불여근린)고 했습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잘 지내야 합니다. 문 대통령도 퇴임 후 이웃사촌끼리 차 한 잔 마실 기회가 있지 않겠나 싶어요. 정치를 잘했다, 아니다라는 건 나와는 관계없으니 인간적으로 만나는 것이죠."

▷대선 후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요. 이런 극한 대립을 화해시킬 마음가짐이나 리더십은 어떤 걸까요.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대부분 감옥에 가서 정말 창피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처벌한 건 다 사면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국회의원들도 너무 싸우는데 어느 나라 역사를 봐도 자중지란 때문에 망합니다. 그렇게까지는 안돼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김병언 기자
사진=김병언 기자
▷곧 부처님오신날인데 부처님 말씀이나 일화 중에 이런 시대에 새겼으면 하는 게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부처님 당시에도 제자들 간에 갈등이 많았고 많이 싸웠어요. 부처님도 골치 아팠죠. 부처님을 비난하는 사람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갈등을 넘어섰는데, 차원을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숲에 가득한 나무들이 키를 재며 다퉈도 공중에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똑같습니다. 부처님처럼 높고 넓은 차원에서 보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소선난감중재(小船難堪重載)라, 작는 배로는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지 못합니다. 자기 역량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감)라, 마음만 먹으면 순간에도 그게 되고, 마음을 먹지 않으면 100년이 가도 안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성파 스님은 작업실 옆 보물창고를 열었다. 스님과 제자들이 작업한 그림과 글씨 등 작품으로 가득한 곳이다. 스님은 직접 쓴 서예 작품 족자들을 놓고 일일이 뜻을 설명하면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했다. 하나같이 마음에 새겨두면 좋을 내용들이다. 그중 '知足者富(지족자부·만족을 아는 자는 부유하고) 行仁者壽(행인자수·어짊을 행하는 자는 장수한다)'를 고르니 거기에 기자의 이름까지 써서 건네준다. "백만장자라도 부족한 생각이 있으면 거지"라는 말씀과 함께.

양산=서화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