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코레아의 신부' 공연 포스터
1897년 '코레아의 신부' 공연 포스터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유럽 최고의 문화예술 도시로 꼽힌다. 유럽 영토의 절반을 600년 넘게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1273~1918) 시절 꽃피운 음악, 미술, 건축의 전통과 유산이 살아 숨쉰다. 전성기였던 18~19세기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브람스 등 거장들의 활약에 힘입어 클래식 음악의 명실상부한 수도 역할을 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올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빈 문화예술의 역사와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3대 공연·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코레아의 신부’ 발레음악 전곡 한국 초연

당시 공연 사진
당시 공연 사진
대한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수교를 맺은 지 5년이 지난 1897년 5월 빈 궁정오페라극장(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전신)에 조선 왕자의 애국심과 사랑을 소재로 한 발레극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가 무대에 올랐다. 빈 궁정발레단장이었던 요제프 바이어(1852~1913)가 작곡한 이 작품은 그해 시즌 최고 레퍼토리로 선정되고, 5년간 공연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는 구스타프 말러가 이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며 전권을 휘두르던 때다. 레퍼토리 선정에 까다로웠던 말러도 이 발레극의 예술성을 인정했던 셈이다. 유럽 공연문화를 주도하던 이 극장에서 장기 흥행하며 ‘코레아’에 대한 당대 유럽인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도 높은 작품이다.

이후 공연 명맥이 끊겨 잊혀진 이 작품은 2012년 독일의 한 음악출판사 창고에서 총악보가 발견되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 일본 배경의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1904)과 중국 배경의 ‘투란도트’(1926)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아시아 소재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이 약 120년 전 유럽에서 공연이 중단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이 작품의 음악을 온전히 되살린다. 오는 5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총 4막 9장의 발레음악 전곡을 초연 당시 오케스트라의 편성(62인조) 그대로 연주한다. 극에 맞게 초연 당시 출연진 및 무대 스케치, 당대 빈 풍경 등으로 구성한 영상을 곁들인다. 연주 시간만 약 90분이다. 총악보가 재발견된 이후 일부 음악을 발췌해 연주한 적은 있었지만, 전곡 연주는 처음이다. 지휘는 빈 심포니오케스트라 소속 지휘자 김여진이 맡는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 한눈에

벨라스케스 '흰 옷의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테레사'
벨라스케스 '흰 옷의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테레사'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유럽을 호령한 최고의 명문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위를 세습해 동로마 제국 멸망(1453년)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칭제(1804년) 이전까지 유럽의 유일한 황제로 군림했다.

1358년부터 조성돼 1891년 완공된 빈 미술사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년 예술 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최대 미술관이다.

오는 10월 25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 전(展)’은 유럽 문화예술의 보고(寶庫)인 합스부르크 왕가 컬렉션의 명화와 명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16~20세기 수집품 중 회화와 공예품, 태피스트리 등 100여 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립중앙박물관, 빈 미술사박물관과 함께 주최한다.

1892년 고종 황제가 선물한 투구와 갑옷
1892년 고종 황제가 선물한 투구와 갑옷
벨라스케스(1599~1660)의 ‘흰옷의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 등 대중에게 친숙한 명작을 비롯해 루벤스(1577~1640)의 ‘필레몬과 바우키스’, 반 다이크(1599~1641)의 ‘야코모 카키오핀의 초상’(1634) 등 바로크 미술의 걸작이 모습을 드러낸다. 1892년 고종 황제가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수교 기념으로 선물한 투구와 갑옷도 선보인다. 윤상덕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수집한 그림과 명품은 동시대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연주

빈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빈필하모닉은 ‘최고 중 최고’란 평가를 받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다. 1842년 빈 궁정오페라극장 악장이던 오토 니콜라이의 주도로 창설된 이후 세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오스트리아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
‘2022 빈필하모닉 내한 공연’이 오는 11월 3일과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하고 WCN이 주관한다. 이번 내한 공연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후 오스트리아가 낳은 세계적 마에스트로인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지휘봉을 잡는다. 2002년부터 미국 명문 교향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벨저 뫼스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는 카라얀 이후 5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로 꼽히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2010~2014)을 지냈다. 빈필하모닉과의 인연도 깊다. 2011년과 2013년에 이어 내년에도 ‘빈 신년 음악회’ 포디움에 올라 빈필하모닉을 이끈다.

11월 3일에는 바그너 ‘파르지팔’ 서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4일에는 브람스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한다. 음악평론가 허명헌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는 ‘황금빛 사운드’를 가진 빈필하모닉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레퍼토리”라며 “1, 2부 모두 빈필하모닉의 색채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곡들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