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조직 솎아내기'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며칠이 지난 1944년 6월 13일. 미 육군 제7군단을 지휘하던 조지프 로턴 콜린스 중장은 사단 보고를 받기 위해 부대를 방문했다가 “대대 및 연대 본부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창설되자마자 투입된 제90보병사단이 문제였다. 사단장 제이 매컬비 준장은 울타리 배수로에 웅크려 숨어 있었다. 지휘 체계를 잃은 사단의 한 보병 부대는 142명 중 32명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265명이 배속된 이 사단 예하 대대 한 곳은 80여 명에 불과한 독일 정찰부대에 항복했다.

콜린스 장군은 즉각 매컬비를 해임했다. 연대장 3명 중 2명도 교체했다. 후임인 유진 랜드럼 사단장도 얼마 뒤 잘랐다. 90보병사단이 제 기능을 한 건 레이먼드 매클레인 준장이 맡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능력만 있으면 중책을 맡겼다. 한 연대장은 27세, 그 밑의 대대장은 25세였다. 이후 90보병사단은 활약하며 전투에서 뛰어난 공적을 세웠다.

‘위대한 장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를 단 《제너럴스》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75년여 동안 미 육군을 이끌었던 장군들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두 번 받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으로 현재 미국 신안보재단 고문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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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장수를 바꾸는 것’이 미 육군의 힘이었음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1941년 12월 7일 미국이 진주만 공습을 당했을 때도 그랬다. 미군은 지휘 체계를 물갈이했다. 허스밴드 키멜 해군 제독, 월터 쇼트 육군 중장, 프레드릭 마틴 소장 등이 쫓겨났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조지 마셜 장군이었다. 마셜은 이들이 전투에서 장병을 이끌기에는 너무 늙어 활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지휘관의 자질은 △건전한 상식 △지속적인 공부 △강인한 체력 △쾌활하고 긍정적인 자세 △결단력 등이었다. 특히 그는 부정적인 측면만 보는 경향이 있는 지휘관은 즉시 제거해야 한다고 믿었다. “비관론자가 이끄는 부대는 비관론에 빠르게 감염된다”는 이유에서다.

노장들이 해임되고 새로 발탁된 인물이 유럽최고사령관에 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그는 준장에다 한직에 있었다. 그런 그를 마셜이 눈여겨본 건 큰 시각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과 외국 군대와의 협동 작전을 갈등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인간적 자질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조지 패튼은 북아프리카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맞붙는 와중에 게으름을 피운 로이드 프레덴달을 대신했다. 이처럼 빠른 보직 교체 덕분에 미군은 최강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맞지 않는 장군과 장교는 빨리 교체한다’는 미군의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셜과 아이젠하워 등이 군복을 벗었고, 남은 사람들은 자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책은 더글러스 맥아더를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다. 그는 마셜과 정반대된다. 마셜은 대통령과 친해지면 쓴소리하지 못할 게 걱정돼 대통령과의 사적인 저녁 자리에 일절 가지 않았다. 반면 맥아더는 대통령이 되기를 꿈꿨고 출세를 위해 자기를 뽐내는 데 더 집중했다. 능력보다는 자신의 인맥에 따라 인재를 기용했다. 그런 까닭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7월 3일 윌리엄 딘 소장이 이끄는 사단이 즉각 투입됐지만, 북한군을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맥아더 역시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지만 금방 자만에 빠져 중공군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하고 말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미 육군은 더욱 관료화되고 순응형 조직으로 바뀌었다. 순환 보직 체제로 옮겨 다닌 탓에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려고 했고, 해임은 사라졌다. 장군들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 쓴소리하기보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그 결과가 베트남전의 참혹한 실패였다.

책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효과적인 최고경영자》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한다. “계속해서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 특히 그런 관리자를 그 자리에서 무자비하게 해임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의무다. 그런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게 놔두면 다른 사람들까지 망가진다. 그것은 조직 전체에 대단히 불공평한 일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