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따라 분유통을 통통 내리치던 딸아이가 '이렇게 하라는 게 맞냐'는 듯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를 따라 분유통을 통통 내리치던 딸아이가 '이렇게 하라는 게 맞냐'는 듯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2021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마냥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먹고 자는 게 다가 아니고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려면 '놀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를 위해 체력이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가 나서야겠다 싶었습니다. 아빠는 처음이라 정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자주]

지난해 3월 태어난 딸아이가 곧 돌을 맞이합니다. 누워서 뒤집기도 못 하던 아이가 이제 곧잘 일어서고,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서너 걸음 정도는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엄마 소리만 내더니 요즘에는 화가 나거나 억울하면 "옴뇽뇽뇸"이라며 역성도 냅니다. 부쩍 큰 모습에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에게는 빠르게 지난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재미있던 책과 장난감이 지겨워질 정도로 긴 시간이었나 봅니다. 얼마 전만 해도 책을 한 장씩 넘기며 그림을 관찰하고 손에 장난감이 잡히면 어깨를 덩실댔는데, 이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장난감은 한 번 집었다 내려놓고 책은 펼쳤다가 금방 집어던지기 일쑤입니다. 새 장난감이 필요한 시기이려나요.

새 장난감이나 책을 살까 싶어도 고민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장난감을 주면 쥐고 흔들고 입에 넣는 탓에 건전지를 사용하는 장난감은 이미 모두 고장 났습니다. 건전지를 쓰지 않는 장난감은 자극이 적은 탓인지 쉬이 관심을 두지 않지요. 책도 동물 소리가 나는 사운드북은 무서워하고, 종이를 들춰 숨겨진 그림을 찾는 플랩북은 죄다 찢어놓습니다. 어떤 장난감을 줘야 재미있어하면서 오래도록 잘 가지고 놀까요.
아이가 고른 스티커를 떼고, 분유통에 붙이는 작업이 한동안 반복됐습니다.
아이가 고른 스티커를 떼고, 분유통에 붙이는 작업이 한동안 반복됐습니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분유를 주며 고민하던 참에 분유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양철 재질이라 두드리면 나름 경쾌한 소리가 나고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데다, 아이가 쉽게 물 수 없는 모양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오랜 기간 함께 해온 물건인데 숨은 면모를 이제껏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네요.

빈 분유통을 씻은 뒤 플라스틱 뚜껑을 치우고 겉면에 패브릭 재질 스티커를 둘렀습니다. 꽃무늬가 펼쳐지니 장난감 느낌이 나네요. 이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딸아이가 씩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분유통과 저를 번갈아 툭툭 치면서 자기도 뭔가 시켜달라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장식용 스티커를 내밀고 분유통과 번갈아 손가락으로 짚으며 붙이고 싶은 스티커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수화나 다름없는 대화였습니다만 뜻이 통했을까요? 아이가 스티커를 유심히 보더니 하나씩 골라 조그만 손가락으로 지목했습니다. 스티커를 떼어내니 자기 손에 쥐었다가 분유통으로 내밀고 비비더군요. 처음 만지는 스티커가 재미있었는지, 딸아이는 한동안 저와 함께 분유통을 꾸몄습니다.

결과가 좋진 않았습니다. 패브릭 재질 위에 붙인 탓인지 옆면에 붙은 스티커는 이내 떨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양철 재질이 그대로인 분유통 윗면으로 옮겨야 했지요. 하지만 그조차도 만족스러웠는지 딸아이는 윗면에 붙은 스티커를 바라보고 만지작대며 좋아했습니다. 즐거웠으니 성공인 셈입니다.
장난감 북채를 쥐어주니 분유통을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장난감 북채를 쥐어주니 분유통을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분유통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소리 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통통통 소리가 나니 스티커만 쓰다듬던 아이도 조금씩 손을 내리치며 관심을 보이더군요. 이내 분유통을 두드리고는 잘했냐는 듯 저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쓰다듬어주니 분유통을 두드릴 때마다 저를 쳐다보네요. 빨리 자기를 쓰다듬으라는 뜻이겠죠? 장난감 북채를 쥐여주니 제법 능숙하게 두드리네요. 플라스틱 북 장난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한 듯합니다.

내친김에 젖병을 앞에 세우고 분유통을 눕혀 볼링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굴린다'는 개념을 이해하기엔 아직 아이가 어렸던 모양입니다. 제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분유통을 쥐여주니 자긴 모르겠다는 듯 팡팡 때리고는 다른 곳으로 기어가더군요. 분유통은 당분간 계속 늘어날 예정이니 나중에 다시 시도해야겠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