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 단편에 담은 '덧없지만 아름다운 꿈'
‘올드보이’ ‘아가씨’ 등을 만든 거장 박찬욱 감독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20분 길이의 단편영화 ‘일장춘몽’(사진)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는데도 영상미가 뛰어나고 생동감이 넘친다. 짧은 작품이지만 호러, 로맨스, 마당극까지 다양한 장르가 펼쳐진다. 박 감독은 지난 18일 상영회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스마트폰으로 찍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유롭다는 거였다”며 “하나의 장르 영화가 아니라 마음대로 왔다 갈 수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마음껏 노는 잔치판 같은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장춘몽’은 애플이 박 감독, ‘1987’ ‘암살’ 등의 김우형 촬영감독과 함께 진행한 협업 프로젝트로, 이날 유튜브와 애플TV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됐다. 다른 카메라 장비 없이 아이폰13프로 스마트폰 여러 대를 이용해 작품을 촬영했다. 박 감독은 2011년 아이폰4로 단편영화 ‘파란만장’을 찍기도 했다. 박 감독은 “‘파란만장’의 기억이 좋아서 그 후에도 동생과 함께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며 “이번엔 진보된 기술이 적용된 기계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다시 찍게 됐다”고 밝혔다.

‘일장춘몽’은 사극이다. 고을의 은인인 ‘흰담비’를 묻어줄 관을 짤 나무를 구하기 위해 ‘장의사’가 무덤을 파헤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바람에 무덤의 주인인 ‘검객’이 벌떡 깨어나 자신의 관을 되찾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벌인다. 그러다 흰담비와 검객은 서로 눈이 맞고,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한바탕 펼쳐진다. 영화 제목 ‘일장춘몽’에 대해 박 감독은 “그냥 ‘몽’이 아니라 ‘춘몽’이라고 한 걸 보면 덧없으면서도 아름다운 꿈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이를 ‘덧없지만 아름다운 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름다우나 덧없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고 설명했다.

단편영화지만 출연진이 화려하다. 배우 유해진이 장의사, 김옥빈이 흰담비, 박정민이 검객 역을 맡았다. 박 감독은 “이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놓고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언제쯤 박 감독님과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불러주셔서 감사했다”며 “감독님이 언어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갖고 계셔서 말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김옥빈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련된 작품”이라며 “여러 장르가 유쾌하게 어우러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정민도 “촬영감독님이 찍고 있다는 걸 못 알아챌 때가 있어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날치 밴드의 리더 장영규 음악감독, Mnet 예능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로 인기를 얻은 모니카 안무감독도 작품에 참여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