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에드바르 뭉크 '절규'

인간 내면의 두려움 묘사
발표 당시 '경고성 글'도

평생 공포에 사로잡힌 뭉크
불안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소더비, 모나리자와 함께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선정
 뭉크, 절규, 1893년, 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 절규, 1893년, 오슬로 국립미술관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회장 로널드 로더는 걸작을 미국식 감탄사에 비유해 설명한 적이 있다. “저는 미술을 사랑합니다. 미술 작품을 보고 난 뒤의 반응은 세 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일단 ‘오!’, 다음으로 ‘오 마이!(어머나)’, 마지막으로 ‘오 마이 갓(으악)!’이 있습니다. ‘오 마이 갓!’ 반응을 불러오는 작품을 사야 합니다. 그 작품의 가치는 하늘로 치솟기 때문이죠.”

노르웨이 국민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 대표작 ‘절규’는 로더가 말한 “오 마이 갓!”에 해당한다. 절규는 세계 각 나라 미술 교과서, 영화, 대중문화, 출판물, 패러디, 각종 복제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는 르네상스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와 뭉크의 ‘절규’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았다.

절규는 왜 불멸의 명작으로 평가받을까.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두렵거나 불길한 감정, 느낄 순 있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공포와 불안, 절망감을 회화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뭉크는 삶의 불안과 두려움을 그림에 최초로 표현한 화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런 뭉크의 명성을 입증하듯 절규의 분위기는 한눈에 봐도 불안하고 절망적이다.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노르웨이 우표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노르웨이 우표

그림 속 남자의 얼굴은 해골을 연상시킨다. 그가 다리 위에 서서 양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공포에 질린 인간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비명이 그림 밖으로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은 보는 이에게 불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뭉크는 그림의 주제, 구도, 색채를 활용해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강조했다. 겁에 질린 남자의 눈과 입, 피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구름, 검푸른 바다와 꿈틀거리는 피오르(빙하가 깎아 만든 U자 골짜기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형성된 만), 사선 방향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다리를 통해 소름 끼치도록 오싹한 불안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남자의 겁에 질린 눈과 크게 벌어진 입이다. 뭉크 이전에 어떤 화가도 인간의 내면에 깃든 두려움과 공포를 이토록 생생하게 그림에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이 그림은 전시회에 발표된 순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한 신문이 ‘뭉크의 그림은 너무 위험하다. 불길한 기운에 전염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성 글을 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뭉크는 오슬로의 에케베르그 언덕에서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강한 불안감을 이 작품에 표현했다고 일기에 적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심한 피로감에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타는 듯한 구름이 짙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피 묻은 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뭉크가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작품에 담은 사연이 있다. 그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에 걸려 사망했고, 열세 살 땐 가장 의지하고 따랐던 누이 소피에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버지와 동생 안드레아스가 연달아 죽음을 맞았고, 여동생 라우라는 정신병을 앓다가 저세상으로 갔다. 어릴 적부터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뭉크는 평생 불행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자신도 일찍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는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환각, 불안장애, 피해망상, 신경과민증 같은 정신병을 앓기도 했다.

이토록 생생한 공포…"조심하시오, 불길함이 전염될 수 있으니"

훗날 뭉크는 ‘절규’를 그리던 시절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뭉크는 불안과 공포에 짓눌릴 때마다 절망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업에 몰두했다. 뭉크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는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화 1150여 점, 판화 1만7800여 점, 수채화와 드로잉 4500여 점을 남겼다. 뭉크가 불안을 창작의 에너지로 바꿨다는 사실은 ‘나는 이 불안이 내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삶에 대한 두려움과 병이 없었다면 나는 키를 잃은 배와 같았을 것이다’라는 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뭉크가 창조한 절규하는 인간상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현대인을 상징하게 됐고, 인간이 매우 위급하거나 몹시 두려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더 나아가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죽음을 표현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불후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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