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네이처 /사진=룰루랄라스튜디오 유튜브 캡처
그룹 네이처 /사진=룰루랄라스튜디오 유튜브 캡처
"우리 지금 컴백 안 한 지 얼마나 지났지?"
"1월에 컴백한다, 2월에 컴백한다, 5월에 컴백한다…저는 잘 될 줄 알고 들어왔는데…"
"소희 언니는 곧 있으면 결혼할 나이야."
"연습실 화장실 불도 나보다 빛나."

어느새 데뷔한 지 3년이 지났다. 여자 아이돌 멤버들이 나눈 대화에서는 걱정과 불안, 초조함 등 복잡한 감정들이 오갔다. 공백기는 1년 6개월을 넘어버렸다. 이때 회사 대표가 등장해 "처! 망할 수는 없다!"고 외쳤다. 그룹 네이처(NATURE)가 선보인 이색 콘텐츠 홍보 영상이다.

네이처는 스튜디오 룰루랄라와 손잡고 '네이처 이대로 처 망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자체제작 다큐멘터리를 예고했다. 이를 통해 120일간의 성장 스토리가 그려질 예정이다.

대중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네이처는 2018년 데뷔해 지난해 여름까지 줄곧 활동해온 팀이다. 한 달에도 수십 개의 그룹이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시장에서 대중의 선택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 '망돌이 될 순 없다!'고 외치는 모습은 어딘가 씁쓸하다.

알고 있어도 애써 외면해오던 '무명'이라는 말을 직접 꺼내다니, 마냥 웃으며 볼 수만은 없는 콘텐츠임이 분명하다. 영상 하단의 댓글란에서도 '이런 자학 프로그램을 하는 게 너무 슬픈데 그만큼 간절한 것 같아서 짠하다', '멤버들한테도 팬들한테도 상처였을 것 같다. 어그로야 끌렸겠다만 망하니 뭐니 말하는 게 쉽겠느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대로 망할 순 없다"…파격에 파격 더하는 아이돌 홍보 [연계소문]
이는 현재 대중가요 시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해 K팝은 역대 최고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다. 총 판매량은 5000만장을 훌쩍 넘었고, 음반 수출액은 사상 최고치인 2억 달러(2355억)를 돌파했다. 그렇다면 이를 대중가요계 전체의 '흥행'으로 봐도 되는 걸까.

가온차트에 따르면 국내 음원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연속 월평균 이용량이 감소했다. 공연 및 신규 음원 발매 감소의 영향으로 음원 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신곡에 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그 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결국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팬덤형 시장'은 더욱 견고해졌다.

즉, 팬이 많은 가수와 적은 가수 간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진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경영난을 겪는 기획사들이 많다. 오프라인 활동이 없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음반 발매가 연기되거나 신규 음원이 안 들어오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는 대형 기획사 위주로 관심을 받고, 세대교체 시기 또한 짧아진 만큼 단기간에 성공 여부를 가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욱 커진 상태다. 이에 각종 플랫폼을 활용한 홍보 전략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KBS1 '6시 내고향', '진품명품', '아침마당' 등에 출연해 이색적인 홍보를 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보편화됐다. 그간 데이식스, 트와이스, 엔플라잉, 우주소녀, 자이언티, 핫이슈 등이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SNS 해킹 콘셉트로 드리핀의 컴백을 홍보한 울림엔터테인먼트 /사진=소속사 제공
SNS 해킹 콘셉트로 드리핀의 컴백을 홍보한 울림엔터테인먼트 /사진=소속사 제공
또 최근에는 드리핀, 효린 등이 SNS 계정을 해킹 당한 듯한 연출로 컴백을 홍보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다만 드리핀의 경우, 울림엔터테인먼트가 해체한 러블리즈의 계정까지 홍보에 이용해 역풍을 맞았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방식 또한 결국 팬덤 비즈니스의 일환인 만큼, 단순히 재미와 자극만을 좇다가 기존 팬들의 반감을 사는 등 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가요 관계자는 드리핀 홍보 사례와 관련해 "마케팅 측면에서는 충분히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껏 그런 시도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라며 "후폭풍이 예상되는 방식일수록 팬들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