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경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방학' 줄거리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던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아빠가 살고 있는 병원에 간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빠와 같은 병, 폐결핵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이른바 슈퍼결핵에. 3년 만에 다시 만난 아빠와 함께 지낸 지 보름쯤 되던 날, 새엄마가 찾아와 죽은 아빠를 데려가면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고, 그런 내 앞에 하루는 상복을 차려입은 여자, 강희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나처럼 이곳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을 잃었고 또 나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그녀가 어째서일까, 나는 자꾸만 궁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언젠가 사랑에 빠진 사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는 엄마에게 보내주기 위해 늦은 밤 병원 내 공소(公所)에 몰래 들어가 성체를 한 움큼 훔쳤을 때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해주었던 수녀를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전해듣는다. 나 같은 슈퍼결핵 환자에게도 듣는 ‘신약’이 나왔고,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하지만 나는 마냥 반가워할 수가 없다. 그 약은 한 알에 6만원씩이나 하고, 또 2년 동안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등단조차 하지 못한 ‘가난한’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결국 인정하게 된 엄마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밀린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성체를 훔친 것은 난데 어째서 벌은 엄마에게 주는 거냐’며 예수에게 따지기 위해 늦은 밤 공소를 찾았을 때, 본의 아니게 피아노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뒤이어 들어온 강희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게 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십자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폐를 소독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향해 맨가슴을 내미는 모습을. 더해서, 마치 신약이라도 먹듯이 그 안에 있는 성체를 꺼내어 먹는 모습을.

내가 이곳에 온 지 1년쯤 되던 날, 그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이 실시된다. 거기에 들면 약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나는 들고, 강희는 들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혼자만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간호사 몰래 그것을 반으로 쪼갠 다음, 그 반쪽의 알약을 가지고 늦은 밤 공소로 가 성체를 훔쳐 먹고 있는 그녀에게 내민다. 그리고 약속한다. 날마다 날마다 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로 ‘공범’이 되기를 거부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