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형제는 왜 서로의 흔적을 지워야 했나
1888년생 정두현은 해방 후 북한에서 김일성대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 도쿄대(농학부)와 도호쿠대(이학부), 대만 다이호쿠대(의학부) 등 세 곳의 제국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그가 북한 정권에 제출한 자필 이력서엔 누락된 가족이 한 명 있다. 막냇동생 정광현(1902년생)이다. 친일파 윤치호의 사위이자 미군정청 관리를 거쳐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는 동생의 존재는 정두현에게 큰 위협이었다. 동생 역시 살아남기 위해 형의 모든 흔적을 지우긴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형제들》은 일제 식민통치와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의 격랑을 맞아 엇갈리고, 대립하고, 헤어져야만 했던 13쌍 형제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을 따라간 책이다. 이승만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빨갱이’를 잡는 데 앞장선 형 이인과 남조선노동당의 핵심으로 활동한 동생 이철, 어두운 친일 과거를 지녔지만 ‘애국가’를 작곡한 까닭에 ‘애국자’로 불린 동생 안익태와 6·25 전쟁통에 북한군 ‘부역자’로 몰려 목숨을 잃은 형 안익조의 사례처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기막힌 사연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 해방 후 좌우대립으로 둘로 갈라진 나라에서 형제·남매들은 역사의 거대한 조류에 휘말려 때로는 적대하고, 때로는 뜨겁게 뭉쳤다. 형제의 선택이 엇갈리지 않았으나 삶이 비극으로 마무리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혁명가 남매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김형선과 김명시, 일제의 밀정으로 임시정부의 처단 대상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선우순·선우갑 형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특별했던 이들 형제의 행적은 친일과 항일, 좌와 우의 단순한 이분법만으론 재단하기 힘들다. 인간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들의 생애도 고귀함과 치열함, 비루함이 구분할 수 없게 뒤섞여 있다. 형제 간의 미묘한 차이를 증폭시킨 것은 역사의 큰 물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형제들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진정한 형제애는 무엇인지, 삶의 옳고 그름은 어떻게 판단하는지와 같은 묵직한 질문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