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뮤즈를 그린 대표작, 파블로 피카소 '꿈'

피카소의 뮤즈
마리 테레즈
내연관계 8년 동안
모든 작품에 영감 줘

곡선과 강렬한 색 대비
연인 향한 강렬한 사랑
육감적으로 표현
 파블로 피카소, ‘꿈(La rve)’, 1932년, 개인소장

파블로 피카소, ‘꿈(La rve)’, 1932년, 개인소장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는 학예, 시, 음악, 무용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고 예술적 재능을 불어넣는 존재를 의미한다. 신화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도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뮤즈’가 존재한다. 현대미술의 제왕으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내연녀였던 마리 테레즈 발테르(1909~1977)는 현실의 뮤즈 중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

마리 테레즈가 모델을 섰던 ‘꿈(La rve)’은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관능적이고 화려하며 서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 테레즈를 향한 피카소의 연애 감정과 성적 욕망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여인은 빨간색 안락의자에 앉아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얼굴과 몸에 사용된 부드러운 곡선, 한쪽만 드러난 젖가슴, 목에 드리워진 우아한 진주목걸이, 강렬한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 대비, 배경의 율동적인 장식 문양으로 여성스럽고 육감적인 면을 강조했다.

비평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마리 테레즈에 대한 피카소의 사랑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는 피카소의 열정을 자극해 창작 활동으로 이끄는 에로틱한 뮤즈였다. 그 증거가 그림에 있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피카소가 두 부분으로 나뉜 연인의 얼굴 윗부분에 자신의 발기된 남근을 추상적 형태로 그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 여인의 포개진 두 손이 은밀한 부위에 놓여 있어 감상자의 시선을 그곳으로 유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의 뮤즈였던 마리 테레즈

피카소의 뮤즈였던 마리 테레즈

이 그림을 그릴 때 피카소는 50세, 마리 테레즈는 22세로 28년 연하였다. 피카소는 러시아 출신 발레리나인 첫 번째 아내 올가 코 클로바의 눈을 속이며 5년 동안 마리 테레즈와 내연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새로운 뮤즈는 우아하고 가녀린 외모의 올가와 달리 그리스 조각처럼 윤곽이 또렷한 눈, 코, 입과 풍만한 가슴, 튼튼한 다리를 가진 건장하고 육감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젊은 연인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은 가정불화와 창조성 고갈로 고통받던 피카소에게 마음의 평온과 행복, 창작의 영감을 선물했다.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에게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1927년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근처 길목에서 처음 만났다. 45세의 피카소는 17세 처녀의 풋풋한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해 즉석에서 구애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피카소야! 당신과 나는 함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녀는 피카소가 유명한 화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피카소는 혼란에 빠진 처녀를 서점으로 끌고 가서 자신의 화집을 보여주면서 열정적으로 구애했다. 첫 만남 이후 피카소는 걷잡을 수 없이 마리 테레즈에게 빠져들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면서 피카소는 자신의 집 인근에 비밀 거처를 마련하고 밀회를 즐기는 한편 그녀를 모델로 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피카소와 내연관계인 8년 동안 마리 테레즈는 그림, 드로잉, 에칭, 조각 등 그의 모든 예술작품에 영감을 주는 뮤즈로 등극했다. 피카소는 특히 연인의 잠든 모습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피카소의 전기 작가 존 러처드슨은 마리 테레즈가 피카소의 여인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랑이었다. 그는 그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했다(……) 모든 것이 그녀와 관련이 있었다.” 영국의 미술 전문가 니겔 코오돈은 두 사람의 연애 시절에 피카소의 창작열이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와 은밀한 관계를 가지며 광적이라고 할 만한 성애를 나눈 시기의 그의 예술세계는 강렬한 창조성으로 빛을 발했다. 피카소에게 섹스와 창조력은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이었다.”

잠든 소녀, 잠자던 피카소의 예술혼을 깨우다

1935년 피카소와 마리 테레즈 사이에 딸 마야가 태어났지만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없었다. 피카소의 아내 올가는 남편의 외도와 혼외 자식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1955년 사망할 때까지 이혼에 동의하지 않고 별거 상태를 유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연인의 열정적 관계도 막을 내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1936년께 피카소는 초현실주의 사진가인 도라 마르와 열애에 빠졌고, 도라는 10여 년 동안 피카소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뮤즈로 등장했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기다림 속에서 살았던 마리 테레즈는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고 4년 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 50년 뒤, 자신의 집 차고에서 목을 맸다. 위대한 거장의 뮤즈였던 과거의 영광만을 간직한 채….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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