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 있는 고음악의 기쁨과 슬픔…서예리와 바로크 프로젝트

지난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9번째 한화클래식 시리즈가 열렸다.

'소프라노 서예리와 바로크 프로젝트'라는 부제로 열린 이번 공연은 그간 꾸준히 성장해온 우리 고음악을 많은 관객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날 공연의 중심은 바로크와 현대를 오가며 세계적인 무대에서 각광받는 소프라노 서예리였지만, 공연에서는 악장과 솔로 바이올린을 맡은 요하네스 리르타우어와 오보에 독주자 신용천, 실력파 테너 홍민섭, 카운터테너 정민호, 바리톤 김승동 등 모든 연주자가 밀도 있고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다.

연주를 맡은 악단 '한화 바로크 프로젝트'는 국내 고음악 전문 연주자들이 결성한 단체다.

1부를 여는 바흐의 오보에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c단조는 전반적으로 듣기 무난했지만, 앙상블 사이 긴장감이 충분하지 않아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독주자들 기량은 훌륭했지만, 악단과의 호흡이 다소 헐거운 듯했다.

악단의 각 파트나 무대 좌우로 나뉜 두 그룹 사이의 균형감은 좋았지만, 소리의 응집력과 일체감이 다소 떨어지게 들렸다.

또 악구를 잘 표현했고, 동형 리듬을 서로 모방하며 치열하게 주고받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들려줬으나 호흡을 치밀하게 유지하지는 못했다.

이 때문인지 바이올린 솔로와 오보에 솔로의 '대화'에서도 조금 틈이 벌어지는 순간이 나왔다.

그러나 바흐의 '커피 칸타타'에서는 악단의 응집력이 한결 좋아졌다.

성악이 전면에 나서고 악단은 배경으로 물러나면서 좀 더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안정감을 찾았다.

격조 있는 고음악의 기쁨과 슬픔…서예리와 바로크 프로젝트

소프라노 서예리는 기대했던 대로 발군의 기량을 보여줬다.

정확한 발음과 또렷하면서도 소리의 중심이 잘 잡힌 발성, 깨끗한 고음 처리 등 테크닉적인 면에서 나무랄 데 없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와 딸의 대화로 이뤄진 '커피 칸타타'에 들어 있는 과장과 허세, 유머와 감정이입 등 다양한 성격을 유연하고도 선명하게 구현해내는 면모였다.

특히 4곡 '아, 커피는 얼마나 달콤한가요'에선 멜랑콜리한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했고, 아리아 8곡에선 선율을 뛰어나게 조형해 유머의 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아버지 역의 바리톤 김승동은 좋은 가창을 들려줬지만, 다소 성량이 충분하지 못했다.

이 작품의 유머가 과장과 허세에 있다면 좀 더 '으름장' 놓는 아버지가 어울리지 않았을까.

해설자 역할의 테너 홍민섭은 명료하고도 설득력 있는 가창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극 중 상황을 보고하는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의 창법)의 정확성과 더불어 마지막 삼중창에서의 탁월한 균형감을 통해 앙상블 가수로서 능력을 보여줬다.

이날 간단한 상황극으로 연출된 '커피 칸타타'는 성공적인 시도였다.

보통 별도의 연기 없이 가창만 하는 교회 칸타타와 달리 커피를 두고 벌이는 아버지와 딸의 실랑이를 소파와 옷걸이, 의상 등 간단한 소품으로 더 친근하게 부각했다.

가수들은 모두 이러한 연극적 상황을 충실하고도 재치 있게 전달했다.

1부가 유쾌함과 친근함으로 꾸며졌다면 2부는 슬픔과 성찰의 시간이었다.

이탈리아 음악가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무거운 어두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율로 슬픔을 표현한다.

반음계로 하강하는 바로크의 전형적인 탄식조가 자주 활용되고, 종종 등장하는 불협화음이 찢어지는 성모의 마음을 나타낸다.

첫 곡과 마지막 곡은 이중창으로, 서예리와 정민호는 훌륭한 앙상블을 들려줬다.

자칫 기교적인 가창으로 흐를 수 있는 악구들을 세심하게 다뤄 서정적인 정조를 유지하면서 종교음악다운 내면성을 재현해냈다.

서예리는 우아함과 절제미를 잃지 않았고, 정민호는 풍부하게 소프라노를 받쳤다.

리르타우어가 이끄는 악단 또한 안정감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다만 '슬픔과 침잠을 더 깊이 드러낼 수 있는 정적인 순간을 더 포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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