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은 책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업"

휴대전화와 태블릿 PC로 콘텐츠를 보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물성이 느껴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위즈덤하우스)은 그런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저자 재영 책수선(실명 배재영)은 책을 고치는 책 수선가다.

저자는 책 수선가를 "기술자"이면서도 "관찰자이자 수집가"라고 말한다.

책이 가진 시간의 흔적을, 추억의 농도를, 파손의 형태를 관찰하고 그 모습을 모으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수선한다는 건 그 책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런 모습들을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책에 얽힌 추억 소환하기…'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저자가 책 수선을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한국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던 그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북아트'와 '제지'(Paper making) 분야를 전공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그에게 손으로만 책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빨리 수련해야 할 기본적인 장비와 재료들, 손기술이 너무 많았다.

지도 교수는 책 수선가 일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직접 다양한 책의 구조를 살피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단계별로 접하면서 다양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수의 조언을 듣고 찾아간 책 보존 연구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열 배나 긴 3년 6개월을 보냈다.

'풀질'과 '칼질' 같은 기본부터 다시 배웠다.

하루 4~6시간 동안 매일 책을 고쳤다.

연구실에서 그는 1천800권 이상을 수선했다.

책에 얽힌 추억 소환하기…'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한국에 돌아와서는 책 수선 작업실을 열었다.

미국 연구실에서 칼 쓰고, 붓 쓰고, 망치 쓰는 법을 배웠다면 한국에서는 사업자 등록하는 법, 작업실 계약하는 법, 임대보증금 보호받는 법, 세금 신고하는 법을 배웠다.

1인 작업실을 열어야 했기에 수선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찾아오는 고객들 덕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수선 맡긴 책을 찾으러 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의뢰인, 기대에 가득 차 내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의뢰인, 조금이라도 흠집이 날 새라 의뢰품을 조심조심 꺼내놓는 의뢰인까지 그의 작업실을 찾은 이들은 다양했다.

수선 맡은 책들도 다채로웠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 여행을 가서 산 헌책, 컬렉션으로 모은 책, 부모님 유품으로 남은 일기장, 친구와의 여행 일지를 적은 노트, 100년도 넘은 고서적들, 이제는 구하기 힘든 만화책 등 무엇하나 사연 없는 책들이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선해서 간직하고 싶은 책이 한 권씩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28쪽. 1만6천원.
책에 얽힌 추억 소환하기…'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