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NBA 영상·연예인 굿즈…'NFT 꼬리' 붙이자 100배 급등
지난 25일 대체불가능토큰(NFT) 거래소인 업비트NFT 경매에서 장콸 작가의 NFT 작품 ‘미라지 캣3’가 3.5098비트코인(약 2억5400만원)에 낙찰됐다. 작가의 실물 작품 가격은 수백만원. 만져볼 수도 없는 데이터가 실물의 100배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그림과 비슷한 가격에 팔린 것이다. 거래를 중개하고 1억원 넘는 수수료를 받은 업비트와 디지털아트플랫폼 XX블루를 운영하는 서울옥션블루는 환호했다. 하지만 대중은 물론 미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국내 NFT 시장의 광풍을 둘러싼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NFT 열풍이 문화·예술·스포츠계를 휩쓸고 있다. 그림은 물론 아티스트의 일상이 담긴 영상, 스포츠 스타가 멋진 경기력을 보여준 순간을 담은 동영상까지 수집욕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NFT 딱지가 붙은 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문화·예술·스포츠 NFT ‘우후죽순’

미술은 NFT 기술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본 분야로 꼽힌다. NFT는 그동안 가치로 환산하지 못하던 무형의 자산에 희소성을 부여해 사고팔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특성이 원본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술과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미술 작품이 NFT의 등장으로 인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은 게 대표적이다. NFT가 등장하기 전 디지털 작품 가격은 실물의 발끝에도 못 미쳤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컴퓨터 파일을 돈 주고 사려는 컬렉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제할 수 없는 꼬리표인 NFT를 파일에 붙이면 그 파일은 세상에서 유일한 ‘원본’이 된다. 디지털 작품도 일반 그림처럼 소장 및 판매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지난 3월 6930만달러(약 828억8000만원)에 팔린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매일:첫 5000일’이 단적인 예다. 이 작품의 실체는 비플이 2007년부터 연재한 디지털 작품을 한데 모은 300메가바이트가량의 이미지 파일이다.

미술 분야는 다른 콘텐츠에 비해 작품을 NFT화하고 거래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 덕분에 NFT 시장이 초기 단계인 국내에서도 그라운드X의 클립드롭스, 갤럭시아머트리의 메타갤럭시아 등 NFT 예술 전문거래소가 앞다퉈 문을 열고 있다.

대중문화와 스포츠 등 한정판 상품의 수요가 많은 다른 분야 기업도 앞다퉈 NFT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하이브와 SM, JYP 등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회사는 모두 NFT 시장 진출 계획을 밝힌 상태다.

칠리즈는 유럽 명문 축구단의 경기에서, 대퍼랩스는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에서 나온 명장면을 NFT로 제작해 판매 중이다.

콘텐츠업계도 이런 흐름에 올라탔다. 지난 9월 뽀로로 제작사 아이코닉스는 글로벌 메타버스·NFT 플랫폼 더샌드박스에서 뽀로로 캐릭터 NFT를 판매했다. 핑크퐁 아기상어 제작사 스마트스터디는 다음달 아기상어 관련 NFT 콘텐츠를 공개할 계획이다.

“만질 수도 없는데 비싸” 비판도

대중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이브가 BTS 관련 상품을 NFT로 출시한다고 발표한 직후 팬들 사이에서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었던 게 대표적이다. “만질 수도 없는 상품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얘기냐”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 8월에는 간송미술관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영인해 100개 한정판 NFT로 발행하고 개당 1억원에 판매한다고 밝혀 국보를 상업화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자전거래를 통한 작품값 올리기, 위작 거래 등 각종 불법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영국에서는 한 큐레이터가 애니시 커푸어를 비롯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 1100여 점(약 71억8000만원어치)을 무단으로 NFT로 제작해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NFT 시장이 과열됐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나섰던 코디 최는 “NFT 시장의 상황은 비정상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작 디지털 아트의 예술적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코디 최는 NFT의 효시 격인 디지털 아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구자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