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7과 3의 예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살펴보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아테네 학당, 1509~1510, 바티칸 서명의 방
아테네 학당, 1509~1510, 바티칸 서명의 방
"라파엘로의 작품은 아주 쉽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한 얘기입니다. 앵그르는 자신이 숭배하던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작품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는데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라파엘로는 대표적인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화가로 꼽힙니다. 스프레차투라는 아무리 어려운 일도 무척 쉬운 일처럼 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심한 듯 여유롭게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너무나 능수능란하게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라파엘로의 대표작 '아테네 학당'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너비 8m에 달하는 그림에 54명의 인물의 개성을 담아 정교하게 표현했죠. 라파엘로는 이 작품을 포함해 수정하기 어려운 '프레스코화' 다수를 능숙하게 그려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라파엘로의 자화상
라파엘로의 자화상
그렇게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이 됐습니다. 세명 중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유능한 스프레차투라 라파엘로의 삶 속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라파엘로는 안타깝게도 세 거장 중 가장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레오나르도가 67세, 미켈란젤로가 89세까지 살다간 것에 비해 한참 이른 나이인 37세에 세상을 떠났죠.

그럼에도 훗날 많은 유럽 화가들이 그의 양식을 따라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지어 이 현상이 지나치게 심화되고 정형화된 탓에,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라는 운동을 하는 '라파엘로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란 그룹도 생겨났죠.

이탈리아 우르비노에서 태어난 라파엘로는 궁정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1살에 아버지를 잃고, 12살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는데요. 다행히 삼촌의 후견과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꾸준히 그릴 수 있었습니다.

22살이 된 라파엘로는 피렌체로 떠나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라파엘로에겐 거장들의 다양한 기법을 '융합'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선 옅은 안개가 덮인 듯 윤곽선을 흐릿하게 그려 은은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레오나르도의 '스푸마토' 기법, 미켈란젤로의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법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들을 만들었습니다.

라파엘로는 25살이 되던 해 교황 율리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가게 됐습니다.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으로 갈등을 겪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라파엘로의 성격은 미켈란젤로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자기 고집이 강하고 외골수적 성향이 강했지만, 라파엘로는 융통성 있고 사교적이었죠.

그래서 교황은 라파엘로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바티칸 궁의 벽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총 4개의 방에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는데요. 콘스탄티누스의 방, 헬리오도로스의 방, 보르고의 화재의 방, 서명의 방이었습니다.

프레스코화는 회반죽 벽이 마르기 전에 물에 녹인 안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회반죽이 굳으면서 안료도 굳어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정말 치밀하게 작업을 해야만 하죠. 그런데 라파엘로는 4개에 달하는 방을 프레스코화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서명의 방에 있는 '아테네 학당'입니다. 인문·과학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이죠. 수많은 현인들이 한 그림 안에 모여 있는데요.
아테네 학당 중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 학당 중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가장 가운데 보이는 인물들 중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 플라톤입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영원불멸한 이데아로 대표되는 관념적인 세계를 나타냅니다.

그의 오른쪽에 서 있으며 손바닥을 아래 방향으로 두고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자연의 진리와 과학을 강조한 인물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아래로 시선을 옮겨보면 계단 한가운데 몸을 기댄 채 비스듬히 누운 무욕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보입니다. 계단 맨 아래쪽에 손으로 턱을 괴고 사색에 잠긴 인물은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이죠.

이들 이외에도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다양한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다양한 철학·수학·천문학자 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그림이 산만하지 않고 조화롭게 느껴집니다. 그 비결은 하나의 소실점(회화에서 물체의 연장선을 그었을 때 선과 선이 만나는 점)에 있습니다.

이 작품에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에 소실점이 존재하는데요. 건물이 이어지는 방향, 바닥에 그려진 패턴의 방향 등 어떤 식으로 선을 연결해도 이 소실점으로 귀결되죠. 실제 펼쳐진 공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이 작품의 주인공이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 것 또한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요. 라파엘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그리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대신 그려 넣었습니다. 플라톤은 레오나르도의 얼굴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로 그리는 식이었죠.
아테네 학당에 그려넣은 라파엘로의 모습
아테네 학당에 그려넣은 라파엘로의 모습
라파엘로 자신의 얼굴도 이 작품에 그렸습니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화가였던 아펠레스로, 작품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 이외에도 '성체논의' '파르나소스' '삼덕상' 등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그림들을 잇달아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의 다정다감한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많았죠.
파르나소스, 1511, 바티칸 서명의 방
파르나소스, 1511, 바티칸 서명의 방
그는 스프레차투라로 꼽히는 만큼 왠지 이 모든 걸 쉽게 해냈을 것만 같은데요. 하지만 그가 남긴 '아테네 학당'의 밑그림들을 보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간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반복적으로 스케치를 하며 부단히 노력한 것이죠.

젊고 사교적이며 실력까지 탁월했던 라파엘로. 문득 그의 사랑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라파엘로는 인기 만점이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실은 라파엘로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 포르나리나'라는 작품에 나오는 여인 마르게리타입니다. 제빵사의 딸이었기 때문에 작품명 자체도 '빵집 딸'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라 포르나리나, 1518~1519, 로마국립고대미술관
라 포르나리나, 1518~1519, 로마국립고대미술관
두 사람은 신분상의 차이에도 많이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일반인을 모델로 전면에 내세운 점, 여인의 왼팔에 둘러진 밴드에 라파엘로의 서명이 들어간 점, 여인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워진 점 등을 통해 알 수 있죠. 여기에 라파엘로는 자신만이 아는 연인의 대담한 관능미까지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마르게리타의 얼굴은 '아테네 학당'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유일한 여인인 이집트의 수학자 히파티아입니다. 라파엘로처럼 이 여인도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죠. 라파엘로가 연인의 모습을 거장들을 그린 작품에 담은 것을 보면 그만큼 마르게리타에 대한 마음이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에 그려넣은 마르게리타의 모습
아테네 학당에 그려넣은 마르게리타의 모습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라파엘로의 장례식은 바티칸 궁에서 치러졌는데요. 율리오 2세에 이어 교황이 된 레오 10세도 평소 아끼던 라파엘로를 잃고 나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신께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천사를 지상에 잠깐 내려보냈다 데려가셨다."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라파엘로. 하지만 그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니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며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는 백조가 떠오릅니다. 그 노력 덕분에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 명작들의 감동을 오늘날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