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맨을 위한 가을·겨울 슈트
비즈니스맨에게 슈트는 갑옷이다. 탁월한 협상가, 수완 좋은 영업맨 기업인이라면 중요한 순간에 늘 정장을 입는다. 근대 민족국가의 군복에서 영향을 받은 남성 슈트는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수컷 공작의 꼬리처럼 한껏 위로 올라간 일명 ‘뽕’으로 불리는 어깨 패드와 탄탄한 가슴 근육을 대신하도록 고안된 캔버싱 등이 슈트의 남성성을 보여준다.
어깨 힘 빼고 컬러는 차분하게…가을 남자, 부드러워졌다

패드가 사라지면서 어깨선은 자연스럽게 내려가고, 캔버싱도 옷의 형태를 유지하는 정도로 얇아지고 있다. 슈트가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비즈니스 캐주얼의 확산으로 잘 차려입은 정장만이 아니라 다양한 패션을 연출할 수 있는 ‘맨즈웨어(man’s wear)’로 떠오르고 있다. 비즈니스 정장의 원조인 삼성물산 패션부문 갤럭시가 제안하는 올 가을·겨울 슈트의 핵심 코드는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슈트
비즈니스 캐주얼은 2005년 삼성의 여름철 쿨비즈에서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 삼성 사장단회의에 참석하는 계열사 사장들이 모두 재킷을 벗고 반팔 셔츠 차림을 하고 왔다. 당시 파격적인 스타일을 제안한 곳이 갤럭시다.

정정화 갤럭시 수석디자이너는 “여름철 시원하게 입을 수 있도록 고안된 비즈니스 캐주얼이 요즘은 가을·겨울 패션으로도 확장되고 있다”며 “4050세대 기업인들은 옷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고, 기업도 조직 문화를 유연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비즈니스 캐주얼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캐주얼로 활용되는 남성 슈트의 가장 큰 변화는 부드러움이다. 정 디자이너는 “예전엔 소비자들이 어깨가 무너진 것 같다며 뽕이 들어간 슈트를 선호했는데 요즘은 정반대”라며 “체크무늬를 사용하더라도 빅체크가 아니라 잔잔하게 묻히는 패턴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한때 여성의 몸을 옥죄던 코르셋처럼 남성의 가슴을 돋보이게 하던 슈트의 캔버싱도 얇아지는 추세다. 몸을 가꾸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실루엣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최근 여성 정장의 어깨선이 위로 솟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젠더리스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브라운색이 주류
슈트에 사용되는 색상도 흙빛에 가까운 브라운(갈색)톤이 유행하고 있다. 붉은 사막을 연상시키는 카멜 컬러를 비롯해 오트밀베이지 라이트그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정 디자이너는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가 강조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심리가 패션에도 반영되고 있다”며 “과장된 실루엣과 형광색 등이 사용되던 코로나19 이전의 경향과 반대”라고 말했다. 겉감으로 사용되는 양모도 본연의 색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염색이 선호되고 있다.

슈트의 스타일과 색감은 단조롭다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진 데 비해 안에 입는 이너웨어는 좀 더 다양하고 화려해지고 있다. 정 디자이너는 “이너웨어로는 니트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나를 위한 ‘보상 소비’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슈트 원단이 고급스러워지고 있는 것도 요즘의 경향이다. 갤럭시가 올 시즌 새로 선보인 란스미어 시그니처 라인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유명 양모업체와 단독 제휴해 180수 이상 최고급 양모로 만든 제품이다. 신축성이 높고 가벼운 저지 소재의 원단을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정 디자이너는 “예전의 슈트는 오래 입고 있으면 어깨가 무거웠는데 요즘 원단은 하나의 실을 꼬아서 연결한 것이라 가볍고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란스미어의 저지 소재를 활용한 재킷은 카디건처럼 편안한 착용감에 패딩 충전재로 보온성까지 겸비했다.
가죽재킷의 귀환
아우터에 가죽재킷이 돌아온 것도 올가을 남성 패션의 주요 흐름 중 하나다. 정 디자이너는 “가죽이 화학섬유 제품보다 색감을 드러내기가 훨씬 좋다”며 “가죽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엄청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외투로는 로브코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허리를 묶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최상의 편안함을 위한 가운 형태의 자연스러운 드레이프코트도 유행이다. 실내복과 외출복을 오가는 가운 실루엣으로 파자마 패턴을 적용하거나 겹쳐 있는 스타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몸을 감싸는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허리 벨트로 활용도를 높인 컴포트 오버코트도 눈에 띈다. 클래식 플란넬이나 트위드 소재로 된 오버사이즈 핏으로 클래식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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