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익' 아닌 일본의 '보수'를 논하다
우리는 일본을 생각할 때 흔히 ‘보수’를 떠올린다. 일본의 보수는 천황이나 야스쿠니신사와 연관된 ‘우익’이나 ‘보수우익’으로 여겨진다. 일본 우익이 일본제국주의의 팽창 과정에 기여했고 천황제 가치를 옹호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것을 보면 이런 연상 작용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보수를 오로지 편협한 원리주의에 집착하는 보수우익으로만 바라보면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우리의 시선을 단순함과 편협함에 가두게 된다. 보수화된 현대 일본을 바라보는 정확한 사고법을 갖기 어렵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사상을 연구해온 장인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현대일본의 보수주의》를 통해 일본 사회의 보수적 사고에 대해 논한다. 그는 문예비평가인 후쿠다 쓰네아리와 에토 준, 경제사상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니시베 스스무를 통해 일본의 보수주의를 살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위기 상황에서 치열한 사상적 논쟁을 펼친 세 비평가들을 저자는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한다. 이들은 진보주의와 미국에 의해 규율되는 전후체제에 비판적이었고, 보수정권의 보수개혁에도 비판적이었다.

저자는 먼저 일본 보수주의의 태동을 살펴보며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급진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탄생했다. 이후 2세기 동안 사회주의와 같은 진보사상과 대결하는 사고였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처럼 이론적 구성 없이 대항 이념인 진보주의의 양태에 따라 변화했다. 사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민주주의를 옹호하게 됐다. 인간의 지력을 과신하고 제도 변혁을 통한 발전을 믿는 진보주의와 달리 보수주의는 전승된 관습, 합의된 지혜, 오래된 규범을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위와 같은 기본적인 특징을 가지면서 국가와 사회에 따라 개별성을 띤다. 영국, 프랑스와 달리 일본의 보수주의는 전후체제의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 저자는 세 비평가들이 활동했던 ‘사상 공간’을 전후체제의 시기와 양상에 따라 구분했다. 후쿠다 쓰네아리는 패전 이후 1960년까지 평화와 민주주의가 쟁점이 되고 안보 문제가 사회를 흔들었던 시기에 진보주의에 대항했다. 에토 준은 ‘발전’과 ‘성장’이 일본 사회의 주요 쟁점이었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고도성장기에 비평 활동을 했다. 니시베 스스무는 냉전 종결 이후 일본이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냉전시대 억눌려 있던 아시아의 역사가 다시 소환된 공간에서 논쟁했다. 이 책은 일본의 보수주의뿐만 아니라 한국의 보수와 보수주의를 생각하는 데도 큰 울림을 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