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씨로 배추 무름병 30% 번졌는데…갑작스러운 한파에 냉해 겹쳐
[르포] "머리통만한 배추 자고나면 짓물러" 웃음 잃는 절임배추의 고장
"가을 날씨가 온탕 냉탕을 왔다 갔다 하니 배추도 몸살을 하는 거지. 30년 넘게 농사지으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여"
20일 절임배추 산지인 충북 괴산군 문광면 들녘에서 말라죽은 배추를 솎아내던 팔순의 김모 어르신이 굽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탄식처럼 한 말이다.

이달 말 수확을 앞둔 그의 배추밭은 멀리서 보면 어른 머리통보다 큰 배추가 노란색 속을 채우며 여물어가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니 배춧잎이 누렇게 변해 말라 죽고 있었다.

속이 짓물러 악취를 풍기는 배추들도 적잖았다.

이 지역은 전국 최대 김장용 절임배추 생산지다.

해마다 20㎏짜리 100만 상자 이상을 생산해 전국 가정에 택배 등으로 공급한다.

[르포] "머리통만한 배추 자고나면 짓물러" 웃음 잃는 절임배추의 고장
괴산군은 올해도 121만 상자 출하를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594㏊의 면적에 배추를 심어 수확을 코 앞에 둔 상황이다.

김씨는 "이 무렵이면 기온이 서서히 내려갈 때지만, 하루아침에 영하로 떨어질 줄 몰랐다"며 "배추가 잘 여물려면 10∼15도의 선선한 기온이 유지돼야 하는 데 갑작스러운 한파에 농사가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이달 초 낮최고 30도에 육박하며 한여름을 방불케 하던 충북의 기온은 지난 16일 느닷없이 곤두박질치면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이튿날은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최저기온이 영하 1도까지 떨어져 서리가 내리고 얼음도 얼었다.

10월 한파특보는 최근 10년간 처음이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병충해도 기승하고 있다.

[르포] "머리통만한 배추 자고나면 짓물러" 웃음 잃는 절임배추의 고장
3만3천여㎡의 배추 농사를 짓는 조모(60)씨는 "잦은 비로 인해 배추가 흐물거리며 썩는 무름병과 노균병, 뿌리혹병이 복합적으로 확산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해까지 겹쳤다"며 "약 30%의 배추가 썩어 못 쓰게 됐고, 자고 일어나면 피해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괴산군은 무름병 등 병해가 발생한 배추밭이 전체의 32%에 달하는 190㏊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이 때문에 올해 절임배추 생산량도 목표 대비 30%가량 줄어든 117만 상자(20㎏)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충북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작년 가을은 가뭄 등으로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았는데, 올해도 10월 중순까지 고온다습한 기후 속에 배추의 병충해 발생률이 평년 대비 20%가량 늘었다"고 "피해가 커질 경우 김장 배추 수급 등에도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