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안 작가가 경기 양주에 있는 가나아뜰리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권지안 작가가 경기 양주에 있는 가나아뜰리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권지안(가수 솔비)만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가는 드물다. 그를 보는 시선은 대개 곱지 않다. 작품활동을 다룬 포털사이트 기사에는 악플이 수천 개씩 달리는 게 예사다. 가수라는 '출신 성분'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 추상이라는 작품 장르 등 모든 게 비판의 대상이다. "예술은 역시 사기"라거나 "현대미술은 가치가 없다"는 조소 섞인 댓글도 심심찮게 달린다.

그런데 시장과 미술계 분위기는 정 반대다. 그의 작품은 각종 경매나 아트페어에 나올 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하며 '완판' 된다. 그간 가수로 쌓은 인지도 덕분만은 아니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일찍, 더 크게 인정받았다. 2019년에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예술 축제 '라 뉘 블랑쉬 파리'에 초청됐고, 지난해 5월엔 유네스코 요청으로 파리 본부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무산됐다. 지난 9월에는 현대미술 중심지인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 내건 작품 세 점을 모두 완판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경기 양주 가나아뜰리에 작업실에서 만난 권 작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미술에 쏟고 있다"며 "여러 논란으로 인해 괴롭고 힘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둘러싼 여러 시선과 편견, 과거의 논란 등 여러 질문에 시원스레 답했다. 소속사 엠에이피크루의 이정권 대표가 곁에서 인터뷰를 도왔다. 분량상 지면에 채 담지 못한 인터뷰 전체 내용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해 게재한다.
심리 치료 위해 시작한 미술, 인생을 바꾸다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2009년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중 갑작스레 가짜 음란 동영상이 퍼졌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검증까지 받았고, 재미삼아 가짜 영상을 퍼뜨린 범인들이 경찰에 잡혔는데도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은 아랑곳하지 않더군요. 하필 그 때 안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가족이 아프고, 집에 도둑이 들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방송 활동을 쉬었어요.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미술이 정말 큰 위안이 돼줬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미술에 관심이 있었나요.
"관심은 있었지만 제가 미술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거든요. 네살때부터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잡고 노래했어요. 이후 합창단을 하고, 리듬체조를 하고, 중학교땐 극단에도 있었고요. 다 가수가 되기 위해서였죠. 다만 고등학교 때 메이크업을 배우면서 색채에 대해 공부하고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힌 게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되긴 합니다."

▶미술의 어떤 점에 빠졌나요.
"2010년에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간단한 일러스트 수준이었어요. 그러다가 점점 미술에 대한 열정이 커지면서 전시도 많이 보러 다니고 미술사 등 관련 공부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제 마음이 점점 건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술로 다친 마음이 낫는 경험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연예인으로서 갖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를 활용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프로 작가가 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라 갑갑해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2013년 지금의 소속사 대표가 된 이정권씨를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미술계 분이라는 말을 듣고 끈질기게 '작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졸랐어요.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죠. 그러다가 그 이듬해에 들은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옆에 있던 이 대표는 "사실 처음에는 그냥 연예인의 취미생활이려니 했다"며 웃었다. "계속 끈질기게 묻길래 '더 솔비다운 작업을 고민해 보라'고 했어요. 어찌 보면 뻔한 얘기인데, 어차피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많잖아요. 가수였던 솔비가 다른 미술 전공자들처럼 붓을 잡고 평범하게 그림을 그리면 재미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참을 고민하더니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더군요."
무대에서 손잡은 가수 솔비와 작가 권지안
권 작가가 생각해낸 장르는 음악과 그림을 융합한 예술 '셀프 컬래버레이션'. 이름은 가수 솔비와 작가 권지안이 협업한다는 뜻이다. 먼저 하고 싶은 얘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한 뒤 그 위에서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다. "제 본질 중 하나는 가수고, 방송 카메라가 있을 때 에너지가 나와요. 그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되겠다 싶었죠."
권지안 작가의 '셀프 컬래버레이션' 연작 중 한 장면. 유튜브 캡처

권지안 작가의 '셀프 컬래버레이션' 연작 중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이렇게 2017년 5월 발표한 '레드'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섬뜩한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흰 캔버스 위 권 작가가 올라오고, 남성 무용수들이 그에게 검은 물감을 뿌린다. 검은 색을 지우려 자신에게 흰색 물감을 부어 봐도 얼룩은 여전하다.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내용이자 여성이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상처를 표현한 작품이다.

"음악에 섞인 셔터 소리는 소비되는 제 자신을 뜻해요. 소비되기 싫다는 건 제가 미술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기도 해요.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성장해 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죠."

작업 과정을 지켜본 이 대표도 관객들만큼이나 깜짝 놀랐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권 작가의 소속사를 창업할 정도로. "미끄러운 물감에 수없이 넘어지고 다쳐가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퍼포먼스를 하는 5분동안에는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더군요. 처음 퍼포먼스를 한 뒤 권 작가가 기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 이만큼이나 에너지 넘치는 작가를 만나본 적이 없었어요.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를 나와 지금의 소속사인 엠에이피크루를 새로 차렸지요."
백치미 이미지·편견·논란과 싸우다
▶이런 작업에 대해 호평도 많았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찮았죠.
"백치미 이미지 때문에 '니가 뭘 아느냐', '관심받으려고 아무렇게나 하는 작업 아니냐'는 비판을 참 많이 받았어요. 솔비로서 쌓은 인지도가 오히려 작품 활동에 마이너스가 된 거죠."

▶어쩌다가 백치미 이미지를 갖게 됐던 건가요.
"사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렇지 않은 분들보다 일반적인 상식이 부족하고 모르는 것도 많아요. 그런데 제 성격이 워낙 솔직해서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야 직성이 풀려요. 몰라도 가만히 있거나 아는 척을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백치미 캐릭터가 만들어졌고, 방송에서 요구하는 역할도 그 쪽으로 많이 갔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이미지가 싫었던 건 아닙니다. 그걸로 웃음과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작가 생활을 하려니 그 이미지가 발목을 잡더군요."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비판 대상이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미대에서 공부한 분들보다 많이 떨어지죠. 그렇다고 해서 미술을 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제게는 저만의 인생 경험이 있고, 오랫동안 대중예술에 종사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저만의 예술을 할 뿐이에요."

옆에 있던 이 대표가 거들었다. 그는 가나아트갤러리 등 정통 미술계에서 10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다. "사실적으로 잘 그린다고 좋은 그림이 아닙니다. 그렇게 치면 어떤 그림도 사진을 따라갈 수 없어요. 물론 그림을 잘 그리면 좋죠. 하지만 작품에 자신의 삶과 경험이 담겨 있고, 그 안에 담긴 깨달음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그게 좋은 예술입니다."

▶지난해 말에는 표절 논란이 일었죠.
"케이크를 만들어서 SNS에 올렸는데, 이 케이크 디자인이 제프 쿤스의 'Play-Doh'를 따라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이래요. 제가 매년 12월마다 봉사를 하는 보육원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보육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케이크를 만들어서 일부는 보내고 일부는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기부하려고 했죠. 재미있는 생각이라고 여겼어요. 케이크를 보시면 알겠지만 전문적인 기술로 만든 게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돈 벌기 위해 대량으로 판매하겠습니까.

SNS에 처음 올렸을 때는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재미있다고들 해주셨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판 댓글이 하나둘 달리더니 순식간에 제가 파렴치한 표절 작가가 돼 뭇매를 맞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작품이 아니라 그냥 예술 활동과 별개로 만든 케이크였습니다. 경제적인 이득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따라해 작품 활동을 한 게 아니었어요."

권 작가는 논란에 대해 설명하며 여러 차례 숨을 골랐다. 감정이 격해지는 듯 했다. 그는 "당시엔 10년 전 악몽도 떠오를 정도로 괴로웠다"고 했다. 아무리 설명하고 해명해도 누구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 10년 전 일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설명이다.
작품으로 정면돌파…논란 딛고 '도약'
권지안 작가의 'piece of hope'.

권지안 작가의 'piece of hope'.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권 작가가 '케이크 연작'을 통해 작품 세계의 도약을 이뤄내는 계기가 됐다. "어차피 제가 설명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묵묵히 작업을 해서 작품으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로서 한방을 날려야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한 거죠. 이런 분노의 에너지를 작품에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을 찾다가 초를 녹여서 캔버스에 박고 강렬한 단색을 칠하기로 했어요. 묵직한 에너지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의도는 적중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케이크 연작은 '대박'이 났다. 최근 런던 사치갤러리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완판된 것도 이 케이크 연작이다. "분노하는 마음도 작업 과정에서 많이 줄어들었어요. 초를 녹여 작업을 하면서 내게 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품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이전부터 해외 미술시장에서 쌓은 명성도 케이크 연작이 빠르게 평단과 미술시장의 인정을 받은 데 도움을 줬다. 2017년부터 권 작가는 해외 미술계를 '노크'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백치미 이미지 등 선입견 없이 그의 작품을 그 자체로 보고 평가했다. "셀프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작업을 했냐'며 놀라더라고요. 전시나 퍼포먼스를 해달라는 요청도 쏟아지고요. 가수 경력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봐주더군요."

2018~2019년에는 거의 해외에서 살다시피 하며 현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품활동을 했다. 미술 공부를 하며 '내공'도 쌓았다. 그 결과 2019년에는 그 해 국내 작가 중 유일하게 라 뉘 블랑쉬 파리에 참여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다.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광주 전시에 와서 작품을 본 뒤 '파리 본사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에서 공연 및 전시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게 정말 아쉬워요."
"틀을 깨는 도전 이어나가겠다"
권지안 작가가 경기 양주에 있는 가나아뜰리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권지안 작가가 경기 양주에 있는 가나아뜰리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요즘 권 작가는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행사에 출품할 작품들을 만들어야 해서다. 1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트페어 초대전시와 갤러리나우 개인전, 내년 1월 LA(로스앤젤레스) 아트쇼, 2월 라스베이거스 개인전, 4월 파리 그룹전, 뉴욕에서 7월과 8월 전시가 예정돼 있다.

▶이제 솔비보다는 권지안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하시겠어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솔비라는 이름도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솔비의 이미지 때문에 여러 고생도 겪었지만, 솔비가 없었다면 지금 제가 미술을 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솔비로 예능 방송 등에 나가서 웃음과 즐거움을 드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다만 요새는 권지안으로서의 활동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솔비의 가벼움이 권지안의 작품에 영향을 미칠 때가 있어서 권지안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쓸 뿐이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요즘 받는 메시지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저는 가수가 꿈인데 그림도 잘 그리고 싶다. 솔비처럼 그림 그리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메시지를 보내와요. 이런 걸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하나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 거니까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도전의식을 갖고, 틀을 깨고,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점도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미술을 시작할 때 여러분께서 '솔비가 미술을 한다고?'라고 놀라셨듯이,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끊임없이 도전하는, 생명력 넘치는,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사진=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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