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핀 개미취…가을과 꽃맞춤
올해의 여행 테마는 꽃인 듯합니다. 겨울 동백으로 시작해 벚꽃과 유채꽃이 봄을 장식했습니다. 여름에는 연꽃과 수국이 지천으로 피어 코로나19로 우울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줬죠. 단풍의 계절인 이 가을, 경북 문경의 작은 절에 개미취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개미취는 쑥부쟁이나 해국, 구절초와 같은 국화과의 가을꽃입니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청초하고 은은합니다. 가을 서정이 느껴지는 개미취와 함께 평온한 시간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

기묘한 바위와 개미취가 어우러진 봉천사

문경 월방산은 해발 360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경치가 뛰어나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월방산은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고인돌 같은 선사시대 유적을 비롯해 삼국시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산신각까지 역사적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월방산 일출은 전국 일출 명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개미취가 지천에 핀 봉천사가 주목받으면서 사진작가는 물론 여행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해질녘 노을이 붉게 물든 봉천사. /이명애 사진작가
해질녘 노을이 붉게 물든 봉천사. /이명애 사진작가
월방산 중턱에 있는 봉천사는 차를 타고 가면 1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야 제대로 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찰로 올라가는 길목에 독특한 동물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두꺼비와 호랑이 형상을 한 바위가 많다. 봉천사 입구에는 울퉁불퉁한 너럭바위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천에 핀 개미취…가을과 꽃맞춤
너럭바위를 중심으로 개미취가 지천으로 피었다. 키가 족히 1m를 넘는 꽃이 산 중턱에 군락을 이룬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개미취는 꽃대에 개미가 붙어 있는 것처럼 작은 털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잎새가 갈라진 모양이 마치 별처럼 아름답다. 개미취의 화사한 풍경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가족과 커플이 찾아왔고, 사진작가들까지 몰리며 봉천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말과 휴일이면 하루 150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문경시 관계자는 “문경에 많은 관광자원이 있지만 이곳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개미취와 함께 월방산의 숨은 비경이 최근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뜨거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개미취꽃 단지는 봉천사 주지인 지정 스님이 직접 조성했다. 개미취꽃이 활짝 피면 사람들이 봉천사를 더 자주 찾을 것이라는 소박한 소망이 결실을 맺어 관광 명소가 됐다. 개미취 때문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봉천사의 주변 풍경도 매혹적이다. 사찰 주변에는 200년 이상 된 소나무만 100그루 넘게 있다.

소나무들이 우뚝 솟은 봉천사 바로 앞 너럭바위에 올라서면 안동 학가산과 의성 비봉산까지 보인다. 덕분에 봉천사는 해돋이가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각광받고 있다.

봉천사 바로 앞에 있는 정자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중기 유학자였던 병암 김현규(1765~1842)가 1832년 세운 병암정(屛巖亭)이다. 김현규는 진사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병암점을 세웠다고 한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정자의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북 최고 풍경 진남교반과 고모산성

봉천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북 최고의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진남교반이 있다. 봉천사가 개미취꽃 풍경으로 빛난다면 진남교반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경북 8경 중 제1경으로 알려진 진남교반은 낙동강 지류인 가은천과 조령천이 영강에 합류했다가 돌아나가는 지점에 있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강 위로 철교, 구교, 신교 등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 있다.
문경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인 ‘고모산성’.
문경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인 ‘고모산성’.
진남교반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으면 고모산성에 오르면 된다. 고모산성은 문경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중 가장 오래전에 세워졌고 규모도 가장 크다. 성으로 오르는 길은 산책로 같은 느낌이 든다. 고모산성은 천하장사 고모노구와 마고노구가 경쟁하며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성 안쪽에는 돌고개 주막거리가 있다.

고모산성의 성곽은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했다. 지금은 옛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남문지와 북문지, 동쪽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시대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는 우리 군사 한 명 없이도 하루 동안 적의 진격을 막았다고 한다. 주변 산세가 하도 험하고 성이 단단해 왜적이 뚫고 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성의 전망대로 가려면 꽤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진남교반이 발치에 놓여 있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 위로 바람이 스친다.

문경=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