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오페라단의 콘서트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벨코레 역을 맡은 바리톤 김성결(왼쪽 두 번째)이 독창하는 모습을 소프라노 변지영(첫 번째·아디나 역)과 뮤지컬 배우 김민영(세 번째·잔네타 역), 테너 허남원(네 번째·네모리노 역)이 지켜보고 있다.   /김영우 기자
1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오페라단의 콘서트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벨코레 역을 맡은 바리톤 김성결(왼쪽 두 번째)이 독창하는 모습을 소프라노 변지영(첫 번째·아디나 역)과 뮤지컬 배우 김민영(세 번째·잔네타 역), 테너 허남원(네 번째·네모리노 역)이 지켜보고 있다. /김영우 기자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그녀 두 눈을 적셔요. 주변에선 질투를 하네요. 내가 더 이상 뭘 바라겠어요?”

테너 허남원이 부르는 아리아가 처연하다.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2막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홀로 부르는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의 첫 구절이다. 자신이 연모하는 아디나의 관심을 무심한 척 거절한 네모리노. 이내 아디나의 눈물을 통해 진심을 확인한다.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가던 극의 분위기를 바꾸는 서정적인 노래다. 슬픈 노랫말과 선율이 소슬한 가을 바람과 함께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국립오페라단과 손잡고 기을밤을 황홀한 아리아로 장식했다. 13일 오후 7시30분부터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 ‘한경필하모닉과 국립오페라단의 콘서트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통해서다. 창간 57주년을 맞은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경제TV와 공동 주최했다.

관객들은 19세기 유럽을 풍미한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를 만끽했다. 사랑의 묘약은 도니제티가 1932년 작곡한 희가극 오페라다. 도니제티는 성악가들이 기교를 최대한 뽐내도록 해 예술성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 작곡가다. 사랑의 묘약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날 음악회의 해설을 맡은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무대 효과와 극적인 박력이 한데 어우러지고, 밝은 색채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게 도니제티 오페라의 특징”이라며 “사랑의 묘약은 19세기 클래식을 상징하는 오페라”라고 설명했다.

극에선 아름다운 미모만큼이나 도도한 지주의 딸 아디나와 그녀를 짝사랑하지만 낯을 가리는 시골 총각 네모리노, 자신감이 넘치는 미남 장교 벨코레 등 세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우린 좋은 친구”라며 퇴짜 맞는다. 상심한 그에게 사이비 약장수 둘카마라가 나타나 싸구려 와인을 ‘렐레지르 다모레(사랑의 묘약)’라고 속여 판다. 와인을 마시고 이성을 잃은 네모리노와 아디나의 엇갈린 감정이 극적으로 표현된다.

이날 공연은 정상급 성악가들이 돋보인 무대였다. 테너 허남원(네모리노), 소프라노 변지영(아디나), 바리톤 김성결(벨코레), 베이스 김석준(둘카마라) 등은 능청스러운 연기와 화려한 발성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테너가 중심에 서는 작품 특성상 허남원의 독창이 빛을 발했던 무대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아디나를 바라보며 세레나데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Quanto e Bella)’를 감미롭게 부르며 관객들을 끌어당겼다.

극의 빠른 전개도 주목할 만했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콘서트오페라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서다. 사랑의 묘약은 전막 공연으로 소화하려면 약 130분이 걸린다. 한경필과 국립오페라단은 이날 인터미션(중간휴식) 없이 약 100분 동안 주요 대사와 아리아를 연달아 들려줬다.

이날 공연은 한경필 음악감독을 거쳐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지휘자 홍석원이 이끌었다. 그는 단원들을 노련하게 지휘하며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막 공연과 달리 한층 빠른 박자로 연주했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국어 대사는 오페라에 낯선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아디나의 절친 잔네타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민영이 감초 역할을 해줬다. 잔네타는 원래 소프라노가 맡는 배역으로 비중이 크진 않다. 김민영은 노래를 줄이는 대신 감칠맛 나는 대사와 연기로 공연 흐름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그럼으로써 극의 길이를 줄이면서도 전막의 줄거리를 온전히 전했다. 연출을 맡은 김숙영의 묘책이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