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 평론가와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출간
임헌영 "세계 진보정권 위기…부패·무능 극복 못하면 보수"
"보수도 합리화되면 진보가 되고, 진보도 부패하거나 분열되면 보수화됩니다.

"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진보 세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진보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했다.

13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임헌영과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 출간 간담회에서다.

임 소장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를 묻자 즉답 대신에 "세계 모든 진보 정권이 위기이고 실패하고 좌절했다"며 "무너지는 사회주의 국가나 독재하는 나라에선 부패, 무능, 분파주의가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진보는 결국 보수가 된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는 '친일인명사전'(2009) 출간에 앞장서며 근현대사 반성의 자료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고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책에는 그가 살아낸 시대적 기록뿐 아니라 문학평론가란 이력답게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치적 산물로서 문학 작품을 바라본다.

임 소장의 자전적 이야기가 씨줄로,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부터 문학 작품, 문학인, 정치인, 사상가 등 인물들이 날줄로 호출된다.

여기에 유 교수가 균형 잡힌 시각과 풍성한 해석을 끌어내며 임 소장과 대화를 이어간다.

이렇게 대화로 풀어내는 방식은 2005년 임헌영이 진보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대담해 출간한 책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서 착안했다.

임 소장은 "등단 55년이 됐는데 말년에 정말 내려놓고 쓰고 싶었다"며 "리영희 선생과 대화록을 낸 지 16년이 됐는데 한 세대가 지나면서 우리 사회가 빨리 변해 통섭의 인문학 속에 정치사회사, 민주화와 통일운동사가 없다.

그 역할을 누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통섭의 인문학을 진작시키는 방법을 찾자, 이게 책을 시도한 이유"라고 소개했다.

16년 전의 임 소장 역할을 한 유 교수는 "임 선생님은 우리 시대를 총체적, 통시적으로 조감하는 한국의 지식인 중 한분"이라며 "수난당한 사람의 기억에 있는 권력 문제, 진보적인 관점, 역사에서의 적극적이고 능동적, 진보적 시각을 가진 증언으론 근래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말했다.

임 소장은 민주화 세대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묻자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는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1987년 6월 이후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며 "과거에는 시민운동가를 다들 존경했지만 이제 그런 존경이 사라졌다.

정치권에서 꼿꼿하게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상한 사건에 얽혀 부정부패도 했다.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은 옥에 티만 있어도 난리가 난다"고 했다.

또한 빈부 격차보다 큰 역사의식 격차를 우려하면서 젊은 세대가 이 책을 많이 접하길 바랐다.

그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앞뒤 세대 경험차가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필수 교양에서 역사가 일탈한 때"라며 "20대의 정치의식을 보면 우리 근대사 초유의 다른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젊은 세대가 20세기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