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안(솔비) 작가 /사진=한경DB
권지안(솔비) 작가 /사진=한경DB
“아트페어 본 행사가 개막하기도 전에 작품이 거의 다 팔렸네요. 내일 행사장을 찾아온 고객들에게 뭐라고 말할지 걱정입니다.”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개막을 하루 앞둔 12일, 국내 주요 화랑들은 하나같이 이처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추상화 거장 하종현 화백의 150호 크기 작품이 3억원 후반대에 판매가 확정됐고, 조현화랑이 출품한 멕시코 대표 현대미술가 보스코 소디의 작품(1억3000만원 상당)도 예약 판매됐다. 선화랑의 경우 출품작 37점 중 절반이 넘는 19점이 이미 팔렸다. “팔 그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호황이다.
조현화랑이 내놓은 보스코 소디의 2016년 작품 ‘Untitled’. 1억3000만원에 예약됐다.
조현화랑이 내놓은 보스코 소디의 2016년 작품 ‘Untitled’. 1억3000만원에 예약됐다.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가 본 행사 개막 전부터 역대급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행사 전 인터넷으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뷰잉룸’과 전화 등을 통해 출품작 중 상당수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다. 미술시장 호황으로 구매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면서 실제로 작품을 보기도 전에 돈을 내고 구매를 확정하는 컬렉터도 급증했다.

박서보 이건용 정상화 하종현 등 국내 미술시장을 이끄는 거장의 작품들은 이번 아트페어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갤러리현대가 내놓은 정상화의 ‘대작 Untitled 80-9’는 수억원대 가격에도 구매 희망자가 줄을 섰다. 한 화랑 관계자는 “작품의 질이 확실한 작가들인 만큼 크기와 가격대만 듣고 구매를 확정하는 컬렉터가 많다”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웃돈을 주고 작품을 사겠다는 요청이 빗발친다”고 말했다.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출품한 리처드 알드리치의 올해 신작 ‘Untitled’. 8만5000달러(약 1억200만원)에 예약 판매됐다.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출품한 리처드 알드리치의 올해 신작 ‘Untitled’. 8만5000달러(약 1억200만원)에 예약 판매됐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도 쏠쏠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미국 뉴욕과 벨기에 브뤼셀을 기반으로 하는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이번 행사에 내놓은 5점 중 3점을 예약 판매한 상태다. 미국 출신 화가 리처드 알드리치의 추상회화는 8만5000달러(약 1억200만원)에,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 아니카 이의 조형 작품은 8만달러(약 9600만원)에 예약됐다. 박희진 글래드스톤 디렉터는 “해외 유력 화랑들이 최근 한국 미술시장을 본격적으로 주목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견·신진 작가들의 작품도 고루 인기를 끌고 있다. 갤러리나우에서는 권지안 작가(가수 솔비)의 작품이 ‘완판’됐고,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연작으로 유명한 김지희 작가의 작품도 9점 중 8점이 팔렸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수준의 호황”이라고 했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도 “구매 요청이 너무 많아 구매자를 선별해야 할 정도”라며 “투자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보다 미술에 대한 애정이 확실한 기존 고객 위주로 판매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개막일 열기도 예년보다 훨씬 더 뜨거울 전망이다. 첫날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000명 미만의 VVIP에게만 공개된다. 입장권 수가 제한된 탓에 컬렉터들의 티켓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화랑협회가 인터넷을 통해 장당 30만원에 판매한 VVIP 입장권 100장이 4일 만에 매진됐을 정도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매출 목표를 최대 매출을 기록한 2019년(300억원)의 두 배인 600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