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Ⅲ’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Ⅲ’
나뭇가지처럼 뼈대가 앙상하고 울퉁불퉁한 청동 여인이 서 있다. 적막에 휩싸인 그림자 같은 모습에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존재의 고통이 담긴 것 같기도 하고, 꼿꼿이 서서 먼 곳을 응시하는 자세엔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가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스위스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걸작 ‘거대한 여인Ⅲ’다. 그 뒤로는 영국의 또 다른 거장 앤서니 곰리(71)의 ‘표현’이 두 팔을 벌려 관객을 맞이한다. 검은 사각형 점으로 형상화한 몸을 통해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마지막은 미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조지 시걸(1924~2000)이 출근 중인 여섯 사람의 모습을 조각한 ‘러시 아워’다. 무심한 듯 하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과 몸짓이 현대인의 내면의 고독과 불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8일부터 재개관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전 ‘인간 일곱개의 질문’ 전시 도입부에 놓인 조지 시걸의 ‘러시 아워’. /리움 제공
8일부터 재개관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전 ‘인간 일곱개의 질문’ 전시 도입부에 놓인 조지 시걸의 ‘러시 아워’. /리움 제공
국내 최대·최고 사립미술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재개관 기념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전시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 인간 존재와 관련한 질문 일곱 가지를 주제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나온 현대미술 작품 130여 점 하나하나가 다른 미술관의 전시 대표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걸작들이다. 재개관을 계기로 새로 펼친 ‘한국 고미술 상설전’은 국보 6점을 비롯한 160점, ‘현대미술 상설전’에서는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 76점을 내놨다.

말로만 듣던 작품들 한눈에

지난해 2월 무기한 휴관에 들어간 서울 한남동 리움이 1년7개월 만에 돌아와 정상급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는 8일 운영 재개장 사흘을 앞두고 5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다. 리움은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 상설전을 상시 무료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기획전은 올해 연말까지 무료로 연다. 리움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 2주 전 사전예약을 한 뒤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작가와 작품 목록은 ‘최고’ ‘대표’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앤디 워홀의 ‘마흔 다섯 개의 금빛 마릴린’, 데미안 허스트의 ‘성 마태의 순교’ 등 미술에 관심 없는 일반인도 알 만한 거장의 작품을 비롯해 론 뮤익의 ‘마스크II’, 레베카 호른의 ‘공기(부드러움)’ 등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백남준과 이건용, 이불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도 나란히 전시장에 나왔다. 미술계 관계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보다 그 규모와 내용이 확장된 형태”라며 “일반인에게 인지도가 높은 근대 회화 작품들을 제외하면 리움의 전시 수준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휴관 기간에 리모델링한 미술관 로비에서는 창문과 특수필름을 통해 오색찬란한 빛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김수자의 설치작품 ‘호흡’을 감상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 작품 상영을 위해 새로 설치된 ‘미디어 월’은 462인치의 크기, 5000만 화소 이상의 해상도를 자랑한다. 미술관 관계자는 “‘디지털 가이드’ 등 관객을 위한 작품 해설 서비스도 업그레이드해 더욱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일까지.

상설전 ‘대폭 업그레이드’

리움 소장 국보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리움 소장 국보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새로 열린 한국 고미술 상설전에서는 리움에서 공개된 적이 없는 걸작들이 눈에 띈다.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 ‘군선도’, 화려한 청자 주전자인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등 국보들이 대표적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제작된 나전칠기 팔각합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조선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백자청화 운룡문호’도 주목할 만한 유물이다.

전반적인 고미술 전시 구성은 휴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리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 여럿 빠지면서 잔과 그릇 등 생활용품이 늘었다. 전시의 화려함은 덜해졌다지만 질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유물이 즐비해 결코 초라하지 않다. 백자를 전시한 층에는 박서보의 ‘묘법 No. 14-81’, 불교 유물 옆에는 애니시 커푸어의 조형 작품 ‘사원’을 배치하는 등 전시장에 현대미술 작품을 조화롭게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현대미술 상설전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우주 코끼리’,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색 거울’, 올라퍼 엘리아슨의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등을 만날 수 있다. 출품작 절반 이상이 리움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