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교수 '언어의 높이뛰기' 출간

병원 진료실 앞. 간호사가 대기 중인 환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OOO님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

" 진료를 마치면 이런 말이 들리기도 한다.

"OOO님 주사실로 이동하실게요.

"
여기서 쓰인 '-ㄹ게요'는 주어의 약속, 의지 등을 표현하는 말로 주어가 '나'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내가 갈게"는 자연스럽지만, "네가 갈게"는 문법에 맞지 않는다.

신지영 교수가 쓴 '언어의 높이뛰기'(인플루엔셜 펴냄)에는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공손성이 문법성을 이기는 문제점 등이 지적된다.

병원에서 잘못 쓰이는 "들어오실게요" 류의 표현은 모두 듣는 사람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말이다.

행동을 요구하는 가장 전형적인 문장은 명령문이지만, 의료 서비스 종사자들이 내원자들에게 명령문을 쓰면 자칫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색한 표현이 쓰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의료 서비스 종사자들이 "들어오세요"가 문법적으로 바르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말하면 내원자 중에는 "어디서 오라 마라 명령질이야" 하면서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어 조심스러워한다고 전한다.

명령문의 최고 존댓말인 '하십시오체'를 써서 "들어오십시오"라고 해도 명령문은 명령문일 뿐이라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문문을 대신 쓰는 경우도 있다.

"창문을 열어 주십시오"보다 "창문을 열어 주시겠습니까?"의 어감이 더 공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문도 듣는 사람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문장이다.

"들어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 내원자들의 기분에 따라서 "왜 뻔한 걸 묻고 난리야"하고 불쾌해할 수도 있어 평서문으로 명령문처럼 행동을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들어오실게요" 류의 말이 고안됐다고 한다.

저자는 "유독 서비스 장면에서 이상한 말들이 많이 관찰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진짜 생각해 보았어야 했던 것은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는 지적이 아니었다"며 "공손성의 요구 뒤에 숨어 있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일상의 갑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라고 강조한다.

이 밖에도 책은 반말과 높임말에 나타나는 권력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라는 표현에서 화장하지 않은 얼굴인 '민낯'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문제, 전통이라며 계속 쓰는 성별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어 등 모두 10가지 주제로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강의를 담았다.

248쪽. 1만5천 원.
"OOO님 들어오실께요"…공손성은 왜 문법성을 이기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