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여름 - 강지이(1993~)
그곳에 영화관이 있었다

여름엔 수영을 했고 나무 밑을 걷다 네가 그 앞에 서 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거기선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너는 장면들에 대해 얘기했고 그 장면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두워지면 너는 물처럼 투명해졌다 나는 여름엔 수영을 했다 물 밑에 빛이 가득했다

강 밑에 은하수가 있었다

- 시집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창비) 中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각자 간직한 올여름의 풍경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저에게는 양평에서 바라보았던 조용하고 괴괴했던 산과 계곡의 풍경이 마음에 남습니다. 어두운 계곡을 보며 상한 우유 냄새나 따뜻한 밀가루 냄새 비슷한, 뭔지 모를 감정이 지나갔다 흩어졌습니다. 걷다가도 말하다가도 슬그머니 마스크를 밀어 올리는 생활 속에서 천천히 다음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걷다가 문득 은하수를 발견해도 좋겠지요.

주민현 시인(2017 한경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