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따라 너울너울…학이 내려앉은 유리의 성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을 지나 청담사거리역 방향으로 이어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 글로벌 명품 브랜드 매장이 들어선 사각형 모양의 단조로운 건물들 사이에 유독 독특한 외양의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얼핏 보면 투명한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이전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9년 10월 선보인 ‘루이비통 메종 서울’이다. 현대 건축의 거장인 캐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외관 설계를 맡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기도 했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은 그가 국내에 처음 설계한 건축물이다.

한국의 전통에서 영감 얻어

루이비통 메종 서울의 상부는 곡선형 유리로 설계됐다. 게리는 곡선형 유리를 주재료로 삼은 특수 제작 패널을 맞춤형 금속 격자에 부착해 외관을 완성했다. 지그재그 형태의 쇼윈도를 시작으로 4층 테라스까지 일렁이는 루버(louvered) 형식의 유리 패널들이 사각형의 기존 건물 구조와 묘하게 어우러진다.

게리는 한국의 역사가 담긴 건축물과 한국 전통 움직임을 건물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18세기 건축물인 수원 화성의 기와지붕과 학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동래학춤 속 흰 도포 자락의 너울거림을 스케치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얀 석조로 이뤄진 사각형 건물 구조 위에 유리 패널들이 얹혀 있어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포 자락이 너풀대며 하늘로 치솟은 듯한 유리 구조물을 보면 마치 언젠가 구름 위로 떠오를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 같은 예술적인 건축 설계는 루이비통의 정신과도 이어져 있다. 설립자 루이 비통은 실용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우아한 디자인의 여행가방과 핸드백, 액세서리 등을 통해 ‘여행 예술(art of travel)’을 브랜드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건축가, 아티스트, 디자이너와 협업을 서슴지 않았다. 이 건물 역시 루이비통과 한국 문화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한국적인 미학을 건축 디자인에 접목했다.

외관과는 다른 듯 이어지는 내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이뤄진 이 건물은 외관 못지않은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입구로 들어가자 돋보이는 층고로 개방감을 극대화한 라운지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12m 높이의 천장에는 알록달록한 조형물과 미술작품들이 걸려 있다. 전 층을 연결하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계단이 공간에 개방감을 더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게리가 아니라 샤넬, 불가리, 디올 등 국내외 유수의 명품 매장 인테리어를 총괄하고 있는 괴짜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맡았다.

그는 자신의 개성을 담는 대신 넘실대는 에너지가 살아 숨쉬는 게리의 건축적 특징을 돋보이게 하고자 내부 공간을 ‘미시언(Miesian)’ 방식으로 설계했다. 미시언 방식은 독일 출신 20세기 대표 건축가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건축 스타일로 ‘간결함이 더 아름답다’는 이념을 표방한다. 빛의 표현에서 흰색 계열의 빛을 사용하는 전통적 고전주의 미학에 유리와 철강 등 근대 산업소재를 영민하게 통합한 게 특징이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면 창문부터 드나드는 모든 공간이 사각형으로 이뤄져 있어 다소 딱딱해 보인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면 어느 층, 어느 공간에 서 있건 외부 창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