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출간

한국 사회에서 집은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드러내는 지표다.

집은 어떤 사람이 얼마나 부유하거나 빈곤한지를 나타내며, 집이 위치한 공간은 그가 접할 수 있었던 교육, 문화 등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집은 한국 사회에서 계급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그러나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집을 계급 문제로만 바라보면 이 공간에 얽힌 다양한 서사, 그중에서도 젠더 문제를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출간된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서해문집)를 통해서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집과 얽힌 여성들의 서사를 읽어내기 위해 가족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주 경험이 있는 19~34세 여성 12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수도권에 진입하는 주목적은 대학뿐 아니라 노동시장이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집은 흔히 따뜻하고, 친밀한 공간,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집밥'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의미하며 향수, 따뜻함 등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의미의 '집'이라는 공간은 정상적인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젠더 편향적인 성격'이 내재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가족 모두가 집에서 같은 안정감을 느낀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이면 항상 불안함을 느낀다고 토로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구체적으로 가사노동-이 너무 많아서였다.

나는 집의 의미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제각기 다른 차원의 감각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주체를 찾는 여정"…자아를 찾고자 집을 나선 여성들

저자는 남성에게는 밖에서 일해 가족을 부양한다는 서사를, 여성에게는 집안일을 도맡는 서사를 부여하는 '이성애 중심적 가족 제도'가 젠더 역할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가족생활을 통해 이 같은 이데올로기가 각인되어 전형적인 여성성이 집에서부터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들의 삶은 가족을 중심으로 꾸려지는데,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 질서 내의 젠더 규범은 자신의 아내, 딸, 어머니로 위치 지어지는 여성에게 성적 정숙함을 강요함과 동시에 보편적인 젊은 여성에 대해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를 수행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책에서 인터뷰한 이들도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남아 선호가 강했던" 가족에게서 벗어나기를, '서울'로 이미지화된 더 넓은 세상에 나가기를 욕망했다.

그들은 이주한 집에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에 분노를, 두려움을,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방감을 느끼며, 기존의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로부터 멀어져 좀 더 평등하고 주체적인 형태의 유사 가족(반려견 키우기 등)을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이주 전의 집이 여성청년들에게 가부장적 질서하에 단단하게 정박된 형태의 장소성을 제공했다면 새로운 집의 장소성은 주체의 일상적 행위나 실천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인 성질을 갖는다.

즉, 여성청년 이주민의 집은 유동하는 형태, 정박되지 않는 상태"라고 강조한다.

이어 "이주를 거쳐 새로운 집에서 겪는 장소화 과정과 일상적 행위는 여성의 주체적 장소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집은 안정감, 친밀함, 따뜻함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집은 모든 감각을 가지고 있고, 그 감각들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인간에게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284쪽. 1만8천원.
"주체를 찾는 여정"…자아를 찾고자 집을 나선 여성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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