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장악 후 아프간 현지 친인척 걱정"…잠 못 이루는 국내 거주 아프간인들

"모두 집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라 학교와 직장도 나가지 않고 있어요.

"
서울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모델 비다(25)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에 항복한 지난 15일 이후 현지 친척들 걱정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01년 가족과 함께 아프간을 탈출해 미국으로 귀화한 비다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모와 삼촌들, 그 아이들까지 모두 착한 사람들이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턴액티브] 주한 아프간인들 "현지주민, 지하실 숨은 채 등교·출근 안해"
비다처럼 국내에 거주하는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에 장악된 현지의 가족과 지인을 걱정하면서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탈레반 총에 맞아 숨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무기도 없이 항복한 아프간 특수부대원 22명을 총살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강압 통치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 심각한 현지 상황…"가족 신변 걱정돼"
국내 거주 아프간인들은 아프간 수도 카불 시내에 혼란이 잦아들고 있지만 시민들이 외출을 삼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 집권을 경험한 아프간 국민 다수가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며 유화책을 쓰는 탈레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다는 "현지에서 졸업을 앞둔 사촌 동생도 탈레반이 두려워 등교를 포기했다"며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이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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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아프간 출신 유학생들은 현지 친인척들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해 아프간 상황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서울에 거주하는 또 다른 아프간인 A씨는 지인을 통해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아프간에 있는 가족들이 다칠까 봐 걱정된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아프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익명으로 보도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수도권의 B대학 관계자는 "현재 학교에 아프간 출신 유학생들이 있지만 다들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면서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현지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한국 등 국제 사회 관심 필요…한국 난민 인정률 낮아"
국내 거주 아프간인들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당부했다.

비다는 "지금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다"면서도 "한국과 국제 사회가 아프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희망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도 아프간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더 열심히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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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국내에 거주하고 있거나 현지에서 한국으로 탈출한 아프간인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난민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106개 시민단체는 20일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아프간 출신 난민 보호책 마련을 촉구했다.

우리나라 난민 인정률은 2018년 3.6%에서 2020년 1.1%까지 지속해서 줄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들어 2분기까지 난민 인정률은 0.4%(5천533건 중 21건)에 불과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아프리카·중동연구부 교수는 "당사자가 난민 지위를 신청해야 법무부 기준에 따른 심사가 시작될 수 있다"면서 "결국 사회적 논의 역시 국내 아프간인들이 난민 지위에 대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