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의 저자 벤저민 하디에 따르면 개인의 의지와 열정, 노력보다 자기 성장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는 삶을 변화시키는 환경의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약은 의지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마치 생존 기제와 같은 작용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미리 모든 자격을 갖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에 그 사람이 될 자격을 얻게 해줄 환경을 만들도록 하라.’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년. 테이트 브리튼 컬렉션, 런던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년. 테이트 브리튼 컬렉션, 런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그 힘을 이용해 변화와 성장을 이뤄냈던 예술가가 있다. 바로 ‘살아 있는 현대미술의 전설’ ‘세계에서 가장 작품값이 비싼 생존 작가’로 불리는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1937~)다. 호크니의 출세작이자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팝아트 이미지 중 하나로, ‘LA에 시각적 정체성을 부여한 팝의 아이콘’이라는 찬사를 받는 ‘더 큰 첨벙’은 환경의 변화가 창의적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큰 첨벙’은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수영장 다이빙대에서 누군가 시원한 물속으로 막 뛰어든 순간을 묘사했다. 수평선에 배치된 집과 수영장, 수직으로 솟은 야자수, 대각선 다이빙 보드를 대비시킨 기하학적 구성의 화면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의 주인공은 여름 한낮의 정적을 깨는 ‘첨벙’ 하는 물소리와 수면으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의 파편들이다. 수영하는 사람은 물속으로 사라져 볼 수 없지만 커다란 물보라가 인물의 동작을 암시한다.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브리튼이 소장한 이 작품은 호크니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한 시절에 그린 동일한 주제의 ‘첨벙 시리즈’ 3점 중 가장 크고 유명하다. 호크니를 세계적 거장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이 걸작은 그와 캘리포니아는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수영장을 갖춘 현대식 고급 주택, 두 그루 야자수, 잔디, 빈 의자…. 커다란 통유리 창문에 맞은편 건물들이 햇빛에 반사돼 비친다.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특유의 맑고 건조한 기후와 주거 환경, 일상생활에서 수영을 즐기는 여가 문화가 도시 풍경에 반영됐다.

영국 예술가인 호크니는 어떻게 캘리포니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수영장 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동성애자 예술가인 호크니는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는 잡지와 사진, 동성애를 다룬 존 레치의 소설 《밤의 도시》를 통해 캘리포니아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접하고 그곳에 가면 예술가의 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964년, 27세의 호크니는 캘리포니아를 처음 방문하고 아름다운 기후와 독특한 주거 환경, 성적 소수자들도 자유를 누리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특히 LA 주민들이 집 뜰에 있는 수영장에서 밝은 햇볕을 받으며 거리낌 없이 벗은 몸으로 수영을 즐기는 장면을 목격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LA에서 그는 평소 고민하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바로 물에 대한 지속적 탐구와 동성애자로서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LA는 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시민들이 수영을 즐기는 문화가 생겼고, 그에 따라 상하수도 시설이 발달해 가정집 수영장에도 물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LA에서 살면 자신의 주요 관심사인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을 관찰하고 다양한 기법을 실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의 몸을 작품 주제로 삼을 기회도 갖게 될 것이었다.

호크니는 창작 환경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1966년 햇볕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풍요의 땅인 LA로 이주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LA는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도시라는 내 생각은 적중했다. LA는 생각했던 것보다 세 배는 좋았다. 수영장, 집, 태양을 보았을 때 더욱 감동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즐거웠고, 육체적으로도 그곳은 내게 영향을 미쳤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그것은 섹스와 관련이 있었다.’

정적을 깨뜨리는 첨벙 소리…LA의 자유가 그려낸 여름의 순간

캘리포니아는 호크니에게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으며 ‘수영장의 화가’라는 별명도 선물했다. 2018년 생존 작가 작품 중 경매 최고가인 9031만달러에 낙찰돼 세계적 화제가 됐던 ‘예술가의 초상’을 비롯해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 ‘닉 와일더의 초상’ 등 호크니의 대표작들이 모두 LA에서 탄생했다. ‘더 큰 첨벙’은 변화를 원한다면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