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16년 만의 공연
세계적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

BC 6세기 '바빌론 유수' 다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눈길

한국적인 恨의 정서에 주목
한복 전통문양 본떠 무대 제작
12~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가 2017년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선보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가 2017년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선보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나부코’는 인류의 성장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악한 민족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치적 해석은 적절치 않아요. 세상에 선한 민족, 악한 민족이 어디 있을까요.”

"선·악 벗어난 인간 본성…새 '나부코' 선보일 것"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오페라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사진)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이렇게 해석했다. ‘나부코’는 베르디가 1842년 제작한 오페라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와 나폴레옹이 지배했고, 베르디는 핍박받는 민족의 감정을 오페라로 풀어냈다.

극의 주인공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포로들로, ‘바빌론 유수(幽囚)’의 당사자들이다. 유배지에 구속된 노예들이 자유를 갈망하며 부르짖는 합창곡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명곡으로 꼽힌다. 후대 음악가들도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구도로 오페라를 제작했다. 포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오페라는 관객이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예술”이라며 “특정한 틀 안에 오페라를 가둘 순 없다. 관객에게는 의미를 곱씹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포다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벗어나 인간 본성을 탐구한 ‘나부코’를 무대에 올린다. 오는 12~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이 16년 만에 다시 공연하는 레퍼토리다. 극 중 바빌론의 왕 나부코 역은 바리톤 고성현과 정승기가, 여주인공 아비가일레 역은 소프라노 문수진과 박현주가 맡는다.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을 이끌고 반주한다.

포다는 세계 오페라계에서 거장으로 불리는 무대 연출가다. 연출부터 무대 디자인, 의상, 조명, 안무 등 공연의 모든 요소를 진두지휘해 제작한다. 1995년 포르투갈 리스본 산카를로극장에서 오페라 ‘나부코’로 데뷔한 그는 26년 동안 세계 명문 오페라단에서 100여 편의 오페라를 선보였다. 2019년에는 프랑스 평론협회로부터 ‘오페라 최고작품상’을 받았다.

화려하고 성대한 무대는 포다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만의 독특한 미장센(무대 구성) 덕에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일감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그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오페라 ‘토스카’를 무대에 올렸다. 당초 ‘나부코’도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극장에서 먼저 공연하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오페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했다.

“극도로 화려한 오페라를 아르헨티나에서 선보이려 했죠. 이탈리아가 코로나19에 시달리는 걸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금 우리가 겪는 상처를 어떻게 오페라에 담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그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주목한 건 한민족의 정서인 ‘한(恨)’이다. 한을 활용해 내면의 상처를 정화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포다는 “한국인의 한은 과거를 되짚어보며 미래를 살피는 개념”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고 고통을 통해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나부코’를 여러 번 무대에 올렸지만 이렇게 깊이 있는 공연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무대를 거창하게 꾸미는 건 피할 생각이다. ‘한’이란 글자를 활용해 무대 배경을 장식하고, 무대 가운데 놓인 거대 조형물에 ‘한’이란 단어를 비출 예정이다. “의미를 전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건 다 덜어낼 생각입니다. 진정성 있게 의도를 전하기 위해 생각의 뿌리만 남기려고 해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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