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것할망당 태풍에 속절없이 무너져 마을주민 "안타까워"
도내 수백 개 신당중 민속문화재 지정 5개뿐 나머지 방치

1만8천 신(神)들의 고향 제주.
[다시! 제주문화](15) '태풍에 와르르' 재해·난개발에 신음하는 제주신당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만큼 제주에는 마을 곳곳마다 신당(神堂)이 있다.

마을에 적어도 1개 이상의 신당이 있었고, 많은 곳에는 7∼8개의 신당이 있기도 했다.

지난 2008∼2009년 제주도와 제주전통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제주지역 신당을 전수조사한 결과 390여 개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예전에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시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신타파 등의 명목으로 많은 신당이 파괴됐다.

세월의 흐름 속에 신당을 비롯한 제주신화, 무속신앙은 '문화'의 영역에서 일부 보호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지금도 자연재해와 난개발 등으로 인해 신당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있다.

◇ 태풍에 속절없이 무너진 신당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바닷가에 위치한 '갯ㄱㆍㅅ할망당'(이하 갯것할망당).
지난달 25일 찾은 갯것할망당은 어찌 된 일인지 처참하게 훼손돼 있었다.

자연석으로 둥그렇게 조성된 신당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쌓아 올린 돌담 대부분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치성물을 올리고 지전과 물색을 넣을 수 있도록 돌로 만든 '제단'과 '궤' 역시 완전히 부서져 그 흔적만 남았다.

인근 카페와 민박, 음식점 등에 신당이 훼손된 이유를 수소문한 끝에 지난해 8∼9월께 제주에 불어닥친 태풍 등 자연재해 때문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신당 훼손 사실을 마을 주민만 알고 있었을 뿐 공무원도 언론도, 전문가들도 1년 가까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시! 제주문화](15) '태풍에 와르르' 재해·난개발에 신음하는 제주신당
갯것할망당은 해녀의 물질작업과 어부의 조업 안전,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당(海神堂)이다.

'갯ㄱㆍㅅ'(정확한 아래아 발음은 아니지만 '갯것' 정도로 발음)이란 제주어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물가'(갯가)란 뜻이다.

갯것할망당은 이름 그대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물가 한가운데 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는 바다가 신당을 에워싸고 있어 당에 들어갈 수 없고, 물이 빠진 썰물 때만 걸어서 당에 갈 수 있다.

갯것할망당이 이처럼 단골(신앙민)들이 드나들기 어려운 바닷가에 자리 잡은 사연은 무엇일까.

그 사연을 알게 되면 태풍에 속절없이 무너진 이번 일이 더욱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원래 이 신당은 현재 위치에서 600여m 떨어진 세화리 통항동 오일시장 인근 해변에 있었다.

당시 신당은 '돈짓당'이라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 세화포구 공유지 매립 사업으로 인해 폐당 위기에 놓였다.

신당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마을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과 해녀, 주민들은 당을 옮기기로 하고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해안도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갯바위 위에 옮겨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함부로 훼손할 수도 없고, 더는 개발사업으로 당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또 모래밭보다 다소 높은 갯바위 위에 있어 바닷물에 신당이 잠기지도 않았다.

밀물 때면 갯것할망당은 마치 작은 섬처럼 보인다.

그만큼 새로 옮길 신당의 위치에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방증이다.

당을 옮기고 난 뒤 신기하게도 바닷가 사고도 줄어들어 마을 주민들은 신령스러운 신당의 힘을 굳게 믿었다.

점차 기존 '돈짓당'이란 이름은 잊혔고 '갯것할망당'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진 파도에 의한 침식 등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을 주민 A씨는 "태풍이나 파도로 인한 침식 등으로 갯것할망당 훼손이 계속해서 이뤄졌고, 그때마다 마을 자체적으로 꾸준히 보수해왔지만, 자연의 힘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갯것할망당은 마을에서도 중요한 신당"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복원 등 해결방안에 대해 마을주민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제주문화](15) '태풍에 와르르' 재해·난개발에 신음하는 제주신당
◇ 재해·난개발로 인한 훼손 이어져
제주도 내 신당은 자연재해와 개발 과정에서 계속해서 훼손되거나 사라져갔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본향당의 상징인 400년 넘은 신목(神木) 팽나무 2그루는 태풍과 화재 등으로 수난을 겪다가 사라졌다.

팽나무 2그루는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뒤 2005년 와흘본향당이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함께 보호받았다.

하지만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지 한 달도 안 돼 팽나무 1그루가 강풍에 가지가 부러지고 2009년에는 촛불에 의한 화재로 밑동 일부가 타들어 가는 수난을 겪었다.

결국 2014년에는 뿌리와 몸체가 썩어들어가 고사했다.

이어 지난 2018년 10월에는 태풍 콩레이 내습으로 남아있던 팽나무 1그루마저 태풍에 쓰러졌다.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신당 훼손도 이어졌다.

2010년대 초반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한 신당은 호텔 주차장을 만드는 과정에 파괴됐다.

또 제주시 도평동 본향당인 대통밧당과 조천읍 함덕 본향당은 공동주택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고 한다.

[다시! 제주문화](15) '태풍에 와르르' 재해·난개발에 신음하는 제주신당
이외에도 지난 2013년 12월 제주시 오등동 죽성마을 본향당인 '설새밋당'은 누군가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당시 현장을 확인한 사람들에 의하면 신당을 지키는 신목들이 베어졌고, 제단도 거의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훼손된 뒤에도 찾는 사람이 없어 5∼6개월간 부러진 신목과 돌 조각들이 널브러진 채 방치됐다.

설새밋당은 흔히 마을에 좌정한 당신(堂神)의 위력이 강해 속칭 '센 당'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로 부임한 뒤 미신타파를 목적으로 '당(堂) 오백과 절(卍) 오백'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진 이형상 목사도 이곳 설새밋당을 어찌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군이 설새밋당의 신목을 자르려다가 신목에 매단 깃대가 저절로 흔들리는 바람에 포기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1948년 11월 제주4·3 당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주민들이 살 곳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죽성마을은 일명 '잃어버린 마을'이 됐지만, 이후에도 이곳 설새밋당을 찾는 단골들의 발길은 수십 년간 이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숱한 위기에도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신당이 하루아침에 파괴된 것이다.

[다시! 제주문화](15) '태풍에 와르르' 재해·난개발에 신음하는 제주신당
보존대책은 없는 것일까.

물론, 도내 신당 중에도 잘 보전돼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있다.

2005년 송당본향당, 새미하로산당, 와흘본향당, 수산본향당, 월평다라쿳당 등 5곳이 제주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선 마을 주민들이 '능향원'(陵鄕園)이라는 공간을 새로 정비해 흩어져 있던 술일할망당과 축일하르방당을 한곳에 옮겨 보전하고 있다.

문제는 나머지 대부분의 신당은 비지정문화제로 마을 차원에서 관리되거나 또는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많은 신당이 사유지에 자리 잡고 있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점에서 제주 한림읍 금능리 능향원 사례는 좋은 선례가 된다.

다음은 능향원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의 일부를 옮겼다.

'우리마을 옛어른신네들은 평화와 사랑을 바라는 신앙을 가지고 살으셨다.

(중략) 본향당에 손을 무두면 손자의 병이 나았고 소황당(小湟堂)에 불을 밝히면 고깃배가 푸짐했다.

겸허와 근면으로 엮으신 세월, 모진 세파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마을 옛어르신네들의 의지의 표상. (중략) 온 마을이 여기 모여 마을 위해 애쓰신 옛이들의 명복을 빌고 고운 마음의 귀풍(貴風)을 되새기자는 합동제의 시발이 되매, 마을의 화합과 번영을 다지는 새 출발의 뜻으로 이 능향원을 마련한다.

살기 좋은 마을 아름다운 금능에 우리 영원한 고향의 꿈을 심고 싶은저….'

[※ 이 기사는 '제주 아름다움 너머'(강정효 저), '제주도 신당 이야기'(하순애 저), 제주 당올레(여연·문무병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 신당을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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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문화](15) '태풍에 와르르' 재해·난개발에 신음하는 제주신당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