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7과 3의 예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살펴보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곤 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 신나고 재밌는 추억들을 만들었죠.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명화들을 감상하는 일은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책으로만 접했던 명화들과 직접 마주하면 커다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7과 3의 예술'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유럽미술여행' 특별호를 준비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총 4회에 걸쳐 유럽에 가면 꼭 봐야 하는 대표작들을 살펴보고, 이를 탄생시킨 작가의 삶과 철학을 나눕니다. 명화의 감동을 다시 떠올리며, 코로나19 확산으로 멀리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함께 달래 보는 건 어떨까요.
시녀들,1656, 프라도 미술관

시녀들,1656, 프라도 미술관

화가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화가는 누굴까요. 다수의 화가가 손꼽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긴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요. 미술사에 길이 남은 화가들로부터 온갖 찬사를 받은 인물이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그에 대해 "내가 뛰어넘고 싶은 유일한 화가"라고 말했고,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 세상에 화가는 그와 나, 두 명뿐이다"라고 했죠. 에두아르 마네는 그를 '화가들의 화가'라고 칭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전성기를 이끈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입니다. 그의 이름이 낯선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 익숙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중에서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1986년 미술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질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였죠.
프라도 미술관/네이버 이미지 갤러리

프라도 미술관/네이버 이미지 갤러리

오늘날에도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엔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벨라스케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요.

벨라스케스의 천재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선, 우선 '시녀들'을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 작품은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44번이나 이 작품을 따라 그리며 모방작을 내놓았고, 프란시스코 고야는 "우리는 이 작품 앞에서 모두 무지하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림을 보면 중간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작고 귀여운 공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입니다. 그림을 언뜻 보기엔 공주를 중심으로 왕실 사람들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정도로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공주 근처에서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인물이 보이시나요. 벨라스케스 자신입니다. 그림 밖에 있어야 할 화가가 그림 안에, 그것도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그려 넣은 것만 같죠. 이로 인해 작품은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 자체가 됩니다.

이상한 점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작품엔 실제 거울이 그려져 있습니다. 공주 뒤에 있는 작은 거울입니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거울 안에 두 사람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펠리페 4세 부부입니다. 왕과 왕비가 그림 밖에 서 있고, 이 그림 속 거울이 이들을 비추고 있는 것이죠.

왕실 사람들을 그린 작품. 그런데 권력의 핵심인 왕과 왕비는 그림 밖에 밀려나 있고, 정작 그림 밖에 있어야 할 화가는 그림 안에 크게 그려진 상황. 이를 두고 미술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습니다.

화가 스스로 신분 상승의 욕구가 강했던 만큼 그 희망과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 그림 속 벨라스케스는 국왕 부부의 초상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국왕 부부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이란 의견 등이 나왔죠.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진짜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정확한 답은 알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 작품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습니다. '시녀들'을 보면 볼수록 관람객은 그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그림 밖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벨라스케스는 관람객을 곧 그림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그림 하나로 다양한 질문을 남기고 독특한 감정까지 선사하는 벨라스케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김희경의 7과 3의 예술]유럽미술여행 2-화가들이 꼽은 최고의 화가는?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귀족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귀족 중에서도 하층 계급에 해당했습니다. 그는 이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뛰어났던 미술 실력을 적극 활용했죠. 이는 자신뿐 아니라 화가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에서 화가들은 예술가로서 충분한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목표한 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24세엔 최연소 궁정 화가가 돼 펠리페 4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왕은 벨라스케스를 매우 총애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가 그림 그리는 걸 지켜봤죠.

그는 4년 후엔 왕의 의전관으로 임명됐고, 왕뿐 아니라 왕실 사람들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다양하게 그리게 됐습니다.

그런 벨라스케스가 궁정 화가라는 타이틀을 뛰어넘어, 최고의 천재 화가란 수식어를 얻게 된 비결은 뭘까요. 그는 궁정 화가로서의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습니다. 그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 무조건 미화하기 보다 최대한 그 사람의 성격과 개성까지 담아냈습니다.
인노첸시오 10세, 1650,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인노첸시오 10세, 1650,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인노첸시오 10세'에선 교황이 뾰로통하고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를 온화하게 바꾸지 않고, 실제 표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교황은 작품을 보고 "지나치게 사실적"이라고 말했죠. 훗날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 작품을 최고의 초상화로 꼽았습니다. 이를 모티브 삼아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교황' 연작도 선보였습니다.

이런 사실적 기법은 '불카누스의 대장간'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화 속 인물과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화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카메라로 현장을 찍듯 순간을 포착해 냈습니다.
불카누스의 대장간, 1630, 프라도 미술관

불카누스의 대장간, 1630, 프라도 미술관

작품에서 후광이 번쩍번쩍 나는 인물은 태양의 신 아폴로입니다.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그리스 신화에선 헤파이스토스)는 아폴로의 오른쪽에 서서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불카누스의 아내는 미의 여신 비너스(그리스 신화에선 아프로디테)인데요. 아폴로가 어느 날 비너스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돼, 이를 불카누스에게 알리러 온 겁니다.

상황을 긴박하게 설명하는 아폴로의 손, 놀란 듯 휘둥그레진 불카누스의 눈,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에 몰두하는 조수들의 모습이 정말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마치 그 찰나를 찍어 사진으로 남긴 것처럼 말이죠.

벨라스케스는 상류층의 초상화, 신화 속 이야기만 그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보데곤(bodegon)'이란 양식을 확산시켰는데요.

보데곤은 과일, 음식, 그릇 등 정물을 소재로 삼으며 서민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그림을 이릅니다. 벨라스케스의 '계란을 부치는 노파'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등이 대표적이죠.

그는 여기서 정물을 섬세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렸습니다. 비록 여유롭진 않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고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려 한 것입니다.
브레다의 항복, 1634~1635, 프라도 미술관

브레다의 항복, 1634~1635, 프라도 미술관

그는 전쟁화를 그릴 때도 인위적으로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전쟁화는 승리자를 영웅시하고, 그 영광을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가 그린 '브레다의 항복'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전쟁을 담고 있습니다. 오른쪽엔 이긴 스페인 군이, 왼쪽엔 진 네덜란드 군이 그려져 있죠.

그런데 이들 중 환호하거나 기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승자든 패자든 모두 지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전쟁은 결코 그 누구에게도 즐거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중간엔 두 장군이 서 있습니다. 패배한 네덜란드 장군이 스페인 장군에게 브레다 성의 열쇠를 넘겨주자, 스페인 장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독여 주고 있습니다. 승패를 떠나 인간으로서 서로를 위로하는 따뜻함을 그림에 담아낸 겁니다.

"나는 높은 수준의 미술에서 2등이 되기보단 평범한 것들의 1등 화가가 되겠다." 궁정 화가가 한 말이라고 쉽게 생각되지 않는데요.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궁정 화가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담았던, 나아가 세상 곳곳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벨라스케스.

그렇기에 그는 화가들이 꼽은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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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7과 3의 예술]유럽미술여행 2-화가들이 꼽은 최고의 화가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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