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백신은 어느날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계 4대 테니스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인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지난 6월 28일 관중을 대거 입장시키고 성황리에 개막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제외하고는 취소된 적이 없었던 윔블던 대회가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전격 취소됐다. 올해 다시 개막한 윔블던 대회 개막식에서는 주목할 만한 이벤트가 있었다. 개막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센터 코트를 가득 메운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로열 박스(귀빈석)에 앉아 있는 여성을 향해 힘찬 박수를 보냈다. 박수 세례를 받은 여성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을 주도한 옥스퍼드대 백신학 교수 세라 길버트였다. “이런 분들의 노고로 올해 윔블던 대회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는 유독 힘이 실렸다.

이달 초 영국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개발한 세라 길버트 교수와 캐서린 그린 교수가 공동 집필한 책 《백서스(Vaxxers)》가 출간됐다. 책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자들이 직접 소개하는 백신 연구의 생생한 과정과 연구자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 각종 규제와 제재, 그리고 정치와 언론의 섣부른 개입 등으로 인해 종종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백신 연구의 현실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세쌍둥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길버트 교수가 개인적인 고충을 털어놓은 부분에서는 여성 과학자를 향한 삐딱한 사회적 시선도 느껴진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백신은 어느날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2020년 1월 1일 길버트 교수는 중국에서 희귀한 폐렴에 걸린 사람 4명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2주 만에 그와 연구팀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병원체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백신 설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1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백신 접종이 시행됐다.

책은 백신 연구 및 상용화에 일반적으로 10년 정도가 필요한데, 어떻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개발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희귀 혈전 반응 등으로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하고 백신접종 거부자(Anti-Vaxxer)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개발자들이 직접 나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백신 연구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몰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유사한 호흡기 질환에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고,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 감염병을 ‘질병X(Disease X)’라고 명명하고 수년간 준비와 임상시험을 해오던 상황이었다. 책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신속한 개발과 출시는 오랜 기간 준비해온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백신은 어느날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과학이 어떻게 감염병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낼 수 있는지 알려주면서, 앞으로 닥칠 수 있는 또 다른 위협에 대비해 과학자들이 지금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소개한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해 계속해서 인류를 위협할 것이지만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