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와 경기필하모닉의 슈만 교향곡
디테일이 살아있는 청량감 있는 슈만
슈만의 교향곡은 작곡가의 명성에 비해 실연 무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스펙타클한 음향으로 듣는 이를 압도하지도, 유려한 선율로 감성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대신 귀로 쫓아가기 쉽지 않은 갖가지 변화가 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생각보다 쉽게 들리는 음악이 아닌 것이다.

지휘자와 악단 입장에서는 극히 세밀한 슈만의 지시를 그대로 구현하기가 까다롭다.

악상은 조밀하고 리듬은 쉴 새 없이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작품의 음향적, 선율적 매력이 바로 이 기발하고 변화무쌍한 디테일에 하나하나 녹아 있다.

매혹적이지만 구현하는 데 위험이 뒤따르는 작품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슈만 교향곡 전곡 도전은 그 자체로 값진 시도다.

성공만 한다면 악단에게나 관객에게나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듣기와 배움을 선사할 기회다.

지난 1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을 위해 마시모 자네티는 특별히 통상적인 오케스트라보다 축소된 편성으로 연주에 임했다고 밝혔다.

이런 경량화를 통해 그는 슈만 원곡이 담고 있는 디테일을 보다 선명하고 설득력 있게 나타내는 데 역점을 두었다.

과연 높은 음역이 좀 더 부각되고 관악이 전반적으로 잘 통제된 경기필의 음색은 가볍고 선명하면서 청량감을 주었다.

전체 공연에 걸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휘자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악기군의 움직임이었다.

지난 3년간 갈고 닦은 호흡이 느껴졌다.

이날 정하나 악장이 이끈 경기필의 현은 작곡가의 의도와 지휘자의 해석을 전달하려는 준비된 자세와 집중력을 모범적으로 들려주었다.

시종일관 현악기군, 그리고 이와 겹쳐지는 목관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슈만 음악의 디테일을 선사했다.

기계적인 재현을 넘어 의미와 정신을 담으려는 열의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청량감 있는 슈만
슈만 교향곡 1번 '봄'은 봄을 알리는 팡파르로 시작된다.

자네티는 금관이 외향적으로 터져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경기필의 관악 주자들은 뛰어난 절제력을 발휘했다.

덕분에 봄의 약동을 전해주는 현과 목관의 움직임이 잘 부각될 수 있었다.

온기가 다소 부족한 감은 있었으나 소리를 섞어주는 역할을 잘 해낸 호른 또한 훌륭했다.

사색적인 2악장에서는 선율성을 잘 살려내면서도 조성 전환 시의 색채 변화 또한 탁월하게 그려냈다.

슈만 특유의 복합 리듬이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3악장 스케르초는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였으나 강약과 색채, 관현악의 밸런스 이동이 유연하고 매끄럽게 드러나 듣는 재미가 있었다.

축소된 편성 때문인지 마지막 악장은 몰아치는 세기나 풍부한 양감을 전해주지는 못했고 그로 인해 고조 시에 다소 돌발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균형감과 섬세함, 리듬의 생생함에서 여전히 높은 완성도를 들려주었다.

1번에 비해 실연에서 만나보기가 더 어려운 슈만 교향곡 2번은 표제가 딸린 다른 교향곡들(1번 '봄', 3번 '라인')에 비해 덜 유명하지만, 작품성에서는 오히려 더 낫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명작이다.

1악장을 여는 은은한 금관의 울림과 고요히 떠도는 현악의 첫머리는 절대 쉽지 않은 대목이다.

자칫하면 금관과 현이 서로 분리된 채 따로 놀기 십상이다.

처음에 잠시 불안했지만, 곧 호른이 뚝심 있게 버텨주면서 소리의 균형을 찾았다.

현악기군은 활달한 본 악장의 핵심을 잘 표현해주었다.

리듬과 활기 면에서는 서주 부분과 대조를 이루지만, 화성적인 면에서는 계속 불안정한 떠돌기를 계속하여 서주 부분의 악상을 이어나가는 원곡의 의도가 아주 탁월하게 전달되었다.

목관의 색채는 시종일관 아주 사랑스러웠다.

리드미컬한 2악장 또한 응집력 있는 연주였다.

변화무쌍한 셈여림과 더불어 규칙성을 깨뜨리는 리듬의 변화를 세심하게 잘 표현했다.

고요하고 명상적인 3악장은 극적인 긴장감을 머금은 깊이 있는 노래로서 마시모 자네티의 서정적, 극적 역량을 잘 드러내 준 뛰어난 대목이었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뜀뛰는 듯한 행진곡풍 모티브에 비해 음계를 재빨리 타고 오르는 모티브가 덜 부각되었다.

그 결과 마지막까지 치닫는 추동력이 다소 약하게 재현되었다.

그럼에도 화려함이나 웅장함 대신 선명함과 투명함을 택한 자네티의 의중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았다.

과장이나 현혹이 아닌 해석!, 실은 이것이 진짜 연주다.

관객들은 이 공연을 통해 베토벤이나 브람스와는 다른 슈만 교향악의 새로운 매력, 곧 교향악에서도 이 정도의 디테일을 상상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매력을 신선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날 무대는 한 사람의 지휘자와 악단이 깊이 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호흡을 오래 맞춰 나갈 때 얼마나 발전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경험해 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는 9월 10일과 11일에 있을 슈만 교향곡 3, 4번 연주도 기대가 된다.

경기필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