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표준'을 선점하는 자, 세상을 주도한다
1904년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한 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마당에 떨어진 담배로 인한 화재였다. 처음에 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불은 순식간에 시내 중심가로 번졌다. 볼티모어 소방서는 인근 도시에 지원을 요청했고, 인근 지역 소방차와 소방 인력이 속속 도착했다. 그러나 끝내 불길을 잡을 수 없었다. 소화전이 표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소방차 호스와 볼티모어의 소화전 간 연결 부위가 맞지 않았던 것. 이 사고로 1526개 빌딩이 불에 탔다.

《표준전쟁》은 표준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표준전쟁에서 살아남을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의료·건강 분야 국제표준화를 이끌고 있는 안선주 성균관대 양자생명물리과학원 교수가 썼다.

표준이 없다면 저마다의 기준이 난무하는 복잡하고 불편한 사회가 된다. 이와 달리 공정하고 투명한 규범을 만들어 공유하면 편리하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표준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며,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필수 기준이 된다.

최근엔 표준이 기술패권 장악의 도구로도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본격적인 표준전쟁에 돌입했다. 저자는 “표준 선점이 갖는 거대한 경제적 이득과 그 파급력 때문”이라며 “한국도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산업 표준을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하는 국제표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도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의 성과평가 및 성과관리에 관한 법률’에 표준이 성과로 포함되면서 연구자 중엔 표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상세히 알 방법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표준전쟁 참전 지침서라 할만하다. 표준의 필요성과 표준화된 수많은 사례, 국가·지역·개인과 관계없이 세계에서 채택돼 사용되는 국제표준, 표준 분류의 다양한 방법, 국제표준화 기구와 국제표준의 종류 및 개발 단계, 등을 촘촘하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