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르네 마그리트 '사람의 아들'

주목받기 싫어 사과로 가린 '자화상'
감상자에게 "왜 가렸을까?" 상상력 자극
좋은 질문은 관점을 변화시킨다
 마그리트 ‘사람의 아들’ 1964. 개인소장

마그리트 ‘사람의 아들’ 1964. 개인소장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할 그레거슨 교수는 세계적 혁신기업의 최고경영자들과 인터뷰한 사례를 바탕으로 질문이 혁신가의 DNA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질문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질문에는 인생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통찰과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이로운 힘이 있다(……)가장 좋은 질문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대표작 ‘사람의 아들’은 호기심을 자극해 탐구 활동으로 이어지는 좋은 질문의 사례에 해당한다.

녹색사과로 얼굴 가린 이 남자…비틀스·애플에 영감을 주다

흰 와이셔츠와 빨간 넥타이, 검은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차렷 자세로 콘크리트 벽 앞에 서 있다. 배경에는 바다와 구름 낀 흐린 하늘이 보인다. 우리는 이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연령대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네 개의 잎이 달린 녹색 사과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남자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마그리트가 남자의 얼굴을 녹색 사과로 가린 의도는 무엇일까.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질문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만일 남자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됐다고 가정해보라. 지극히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에 불과할 뿐이며 관객의 눈길도 끌지 못할 것이다. 남자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복장을 한 데다 구도 및 조형기법에서도 특별하게 느껴질 만한 요소를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비틀스 애플로고(왼쪽)와 애플컴퓨터의 로고.

비틀스 애플로고(왼쪽)와 애플컴퓨터의 로고.

그런데 평범한 남자의 얼굴을 흔한 녹색 사과로 가렸을 뿐인데도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남자와 사과를 교묘하게 배치한 결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 창조됐다. 감상자는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한편 ‘왜?’라고 묻게 된다. 남자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필 녹색 사과일까, 남자와 사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등등. 마그리트는 외견상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요소를 결합해 감정적 충격을 주는 일명 ‘낯설기 기법’을 개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낯설기 기법’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 그림은 익숙한 요소들을 비합리적으로 조합해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마그리트식 주제의식이 가장 잘 구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그리트의 자화상이기도 한 ‘사람의 아들’은 1963년 마그리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해리 토르치너가 의뢰해 제작됐다. 예술가의 개성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타인의 주목을 받는 것도 싫어했던 마그리트의 천성이 익명성을 강조한 자화상에 반영됐다. 남자가 쓴 평범한 중절모는 마그리트가 평소에 즐겨 착용한 모자로, 마그리트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이 중절모도 개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군중의 익명성을 상징한다.

마그리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의 아들’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또 다른 것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이 보는 것에 의해 숨겨진 것을 보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것에 관심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숨겨진 것들 사이에는 매우 강렬한 느낌, 일종의 충돌이 발생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릴리 피어솔은 “‘사람의 아들’은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그림 중 하나이며 마그리트는 숨겨진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평가했다.

마그리트는 평생에 걸쳐 물리 법칙의 절대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좋은 질문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가능성까지 열어준다는 것을 작품으로 증명한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살바도르 달리의 걸작 ‘기억의 고집’과 함께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가 됐고 미술을 비롯해 책, 광고, 음악, 영화 및 비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영감을 줬다.

녹색사과로 얼굴 가린 이 남자…비틀스·애플에 영감을 주다

대표적으로 1970년 미국 화가 노먼 록웰이 이 그림에 경의를 표하는 패러디 작품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마그리트의 열성 팬인 폴 매카트니는 전설적 팝 그룹 ‘비틀스’가 1968년 설립한 음원유통회사 ‘애플’의 ‘녹색 사과’ 로고를 등록하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컴퓨터가 ‘애플’의 회사명과 사과 로고를 쓰자, 1978년 비틀스가 애플 컴퓨터를 상표권 침해로 고소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또 1999년 개봉한 존 맥티어넌 감독의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팝의 황제 마이클과 여동생 자넷 잭슨의 뮤직비디오 ‘비명’이 태어나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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