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0여 년간 광고 집행 기준으로 활용해온 한국ABC협회의 신문부수공사(조사) 결과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수행하는 여론조사 형식의 ‘구독자 조사’, ‘언론의 사회적 책임’ 등 새 지표를 올해 만들고 내년부터 이를 기준으로 정부 광고를 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언론사들의 영향력을 측정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에서 자의적인 줄세우기로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ABC 신문부수 대신 여론조사"…언론 직접 줄세우나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한국ABC협회 사무감사 이행점검 결과 및 향후 정부광고 제도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황 장관은 “ABC협회 부수공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제도 개선을 권고했으나 협회가 이 중 대부분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는 10월 전 시행령을 개정해 ABC협회 부수공사 결과를 정책에 활용하지 않기로 하고 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 잔액 45억원도 환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ABC협회 부수공사를 대체할 여러 지표를 직접 개발하기로 했다. 먼저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전국 5만 명의 국민에게 대면으로 열독률·구독률 등을 묻는 ‘구독자 조사’를 올해 12월까지 추진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종이신문뿐 아니라 모바일·인터넷 기사 이용 비율까지 포함한 ‘결합열독률’을 조사할 계획”이라며 “상세한 조사 내용은 연구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언론의 사회적 책임’ 지표도 신설해 광고비 산정에 반영하기로 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 건수 등이 많은 언론사는 점수를 낮추는 식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두 지표를 핵심으로 하고 이 밖에 포털 제휴 여부, 인력 현황, 법령 준수 여부 등도 참고 지표로 활용할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새 기준을 통해 정부 광고를 집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진국 중 정부가 직접 언론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각국 ABC협회 등 민간단체가 부수 등 영향력을 측정한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행 ABC 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직접 언론사들의 순위를 매기겠다는 건 지나치다”며 “서구 선진국 대부분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ABC 제도를 보완해 가며 잘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 건수를 광고 집행 기준에 넣으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악의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가 정부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직권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전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피해자 구제는 수년 뒤로 밀릴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