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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맛이 있다면 그게 바로 서핑일 겁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프로서퍼인 존 맥카티가 “서핑은 지구상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경험”이라며 한 말이다. 물 위를 내달리는 짜릿함과 성취감, 파도 위에서 노니는 자유로움은 인간의 해방감을 한껏 자극한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국내 서핑 인구수만 봐도 강한 중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한서핑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서핑 인구는 40만 명(2019년 기준)을 넘었다. 5년 새 10배 급증했다. 개최를 앞둔 도쿄올림픽에 이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이기도 하다. 미국의 록밴드 비치보이스의 ‘서핑 USA’는 서핑의 매력을 담은 노래로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대변했다. ‘만일 미국 전역에 바다가 있다면 모두 캘리포니아처럼 서핑할 거예요. 헐렁한 바지를 입고 가죽끈으로 만든 샌들을 신은 모습을 볼 거예요.’ 가사처럼 파도를 사랑하고, 바다 곁에 머무는 서퍼들의 자유로운 생활 방식은 답답한 도시와 대비를 이룬다.

영화에선 키아누 리브스,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폭풍속으로(1991년)’가 있다. 서핑으로 시작해 서핑으로 끝나는 이 영화에서 한 서핑숍 꼬마가 리브스에게 건넨 말 “서핑이 아저씨 인생을 바꿀 거예요”에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 서핑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차례 우승한 미국의 서퍼 선수 겸 배우인 켈리 슬레이터도 이같이 말했다. “서핑은 마피아 같다. 한 번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다. 출구는 없다.”

서핑은 폴리네시아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폴리네시아는 하와이, 뉴질랜드, 사모아 등 오세아니아 동쪽 해역의 수천 개 섬을 총칭하는 말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이 나무로 만든 보드를 타고 파도를 즐기던 놀이가 오늘날 세계 3500만 명이 즐기는 서핑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서퍼들의 인사말인 ‘샤카(shaka)’도 하와이에서 시작됐다. 손의 중간 세 손가락을 구부리고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서 하는 손 인사다. 하와이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 연대, 이해를 의미한다. 이른바 ‘알로하 정신’이다.

서핑을 통해 세상 사는 이치도 엿볼 수 있다. 서핑을 하려면 파도에 맞서야 하는데, 파도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파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치 장자가 말한 ‘승물유심(乘物遊心: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타고 노닐다)’과 비슷하다.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사의 파도를 타라. 네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맡기고, 네가 걷는 길을 풍요롭게 가꾸라.”(내편 제4장 인간세)

서핑은 육체를 단련시키는 것 이상으로 정신수양을 요구한다. 끝없는 실패와 좌절을 겪고 이를 인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서퍼로 거듭난다. 서프보드에 선 채로 파도를 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수없이 넘어지고 바닷물을 들이켜면서도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 보상은 황홀하다. 바람이 불면 서퍼들의 마음도 설렌다. 시선은 빌딩숲 너머 바다로 향한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나와 춤추자”고 손을 내민다. 그렇게 서퍼들은 다시 바다로 달려간다.

최진석/정소람/구민기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