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주범 석탄재는 천막 덮은 채 방치 "고정용 포대도 삭은 지 오래"
주민 100여 명 여전히 거주…"장마철 큰비 오면 산사태 반복될까" 우려
책임 인정 못 하는 정부 항소에 피해자들 "정부가 현장 회복 나서야"
[장마, 불안한 부산]② "비 올 때마다 검정물 줄줄" 구평동 산사태 현장

"비만 오면 점검을 위해 비탈길을 오르는데, 그때마다 바위 사이로 검정 석탄재가 줄줄 흘러내려 옵니다.

2년 전 악몽이 되풀이될까 무섭습니다.

"
22일 오후 산사태 사고가 발생한 부산 사하구 구평동.
이곳은 많은 비가 내린 다음 날인 2019년 10월 3일, 군 연병장 아래 시커먼 석탄재가 작은 마을과 공장을 덮친 곳이다.

이 사고에 대해 재판부는 '인재'라고 결론을 냈다.

성토제(석탄재) 성질에 배수시설 불량 등이 오랜 시간 더해져 설치 보존상의 하자로 발생했다는 이유다.

당시 이 산사태로 일가족 등 4명이 숨지고 마을 주변 공장들은 수십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장마, 불안한 부산]② "비 올 때마다 검정물 줄줄" 구평동 산사태 현장

2년이 지난 지금, 산사태 현장은 언제 그런 참혹사가 있었냐는 듯이 잘 정비된 것처럼 보였다.

사고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재는 초록색 천막에 덮여 있어 푸른빛 언덕이 연상됐다.

그러나 비탈길에 오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천막을 고정하기 위해 설치된 자갈 포대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원래 손톱 크기의 자갈은 하얀 포대에 담겨 있었는데, 햇빛, 바람 등으로 부식된 지 오래였다.

언덕에 오르기 위해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자갈들이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장마, 불안한 부산]② "비 올 때마다 검정물 줄줄" 구평동 산사태 현장

비가 올 때마다 이 언덕을 오른다는 이주용 구평동 6통장은 "비가 올 때마다 사고 날이 떠올라 무너질 기미가 없는지 항상 현장을 찾는다"며 "비가 많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물에 젖은 석탄재가 마을을 향해 내려올 때면 섬뜩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갈이 천막을 고정한다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큰비가 오면 언제 쓸려 내려올지 몰라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장마, 불안한 부산]② "비 올 때마다 검정물 줄줄" 구평동 산사태 현장

특히 올해 장마가 예년보다 늦어지면서 이곳 인근에 사는 주민 100여명과 공장 업주의 불안 역시 길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이번 장마 기간에 강한 비가 내린다던데 또다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이후 이사를 하고 싶어도 형편이 어려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결국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만 피해를 입고 두려워하는 것 아니냐"며 토로했다.

[장마, 불안한 부산]② "비 올 때마다 검정물 줄줄" 구평동 산사태 현장

주민들은 보상 주체를 명확히 함으로써 석탄재 정리 등 사고 현장을 근본적으로 재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평동 산사태 유족과 피해기업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지난달 13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에서 이에 대해 항소를 하면서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

이처럼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자 현장 인근에는 사고로 뼈대만 남은 건물 잔해가 곳곳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한 공장 내부에는 2년 전 쓸려온 석탄재를 여전히 처리하지 못한 채 방치 중이었다.

피해 기업 관계자는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해 재기하지 못한 기업도 많다"며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이번 장마에 또다시 피해가 생길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족과 피해기업을 위해서라도 더이상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장마, 불안한 부산]② "비 올 때마다 검정물 줄줄" 구평동 산사태 현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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