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에 반하다…이강소 화백의 '컬러풀한 도전'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강소 화백(78)은 평생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왔다. 시작은 행위예술이었다. 1973년 서울 명동회랑 전시장을 술집처럼 꾸몄던 전시 ‘선술집’, 1975년 파리청년비엔날레 전시장에 닭을 풀었던 ‘닭의 퍼포먼스’는 한국 실험예술의 전설이 됐다. 1985년부터는 추상화가로 변신해 획을 긋는 방식과 화면 구성 등을 바꿔가며 화폭 위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붓 터치로 그린 그의 무채색 그림은 여백의 미와 기(氣) 등 동양적 정신세계를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老)화백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신작 ‘청명’ 연작(사진)을 통해서다. 이번에는 무채색에서 탈피해 주황색과 노란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의 아크릴 물감을 꺼내들었다.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이미지 밑에 깔린 화려한 색채가 생동감을 더한다. 그는 “색이 나를 유혹했다”며 “20여 년 전 사둔 물감을 우연히 꺼내 칠해보니 색이 너무 아름다워 색채 실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몽유’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신작을 비롯해 이 화백의 그림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그가 그려온 회화 작업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1층 전시장에는 청명 연작 3점 외에 1999년에 그린 ‘강에서’ 연작 3점이 걸렸다. 배를 타고 본 중국 양쯔강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다. 거친 붓질에서 험준한 산자락과 세차게 흐르는 강물의 호쾌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흰색 바탕에 붓으로 툭툭 선을 그어 상형문자나 서예작품처럼 보이는 추상회화들을 만날 수 있다. ‘허-14102’는 폭 5m의 캔버스에 열 번 안팎의 거친 붓질로 완성한 대작이다. 이 화백은 “스스로 그려진 그림”이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등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출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붓질”이라고 설명했다.

2층 전시장에서는 그의 상징인 오리 모양의 도상이 그려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오리로 보든, 배나 사슴으로 보든 상관없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림을 그린 의도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감상하고 해석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 덕분에 이 화백은 내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