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단원들이 오는 24일 개막하는 무용극 ‘산조’를 연습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단원들이 오는 24일 개막하는 무용극 ‘산조’를 연습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느린 곡조를 이어가다 이내 휘몰아친다. 선율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화성이 담겨 있다. 우리 전통 기악양식인 ‘산조(散調)’ 이야기다. 19세기 들어 가야금, 아쟁 등 국악기 독주로 판소리 장단을 풀어내면서 산조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개별 가락은 무질서한 듯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완결성이 높다. 흐트러지면서도 정제된 국악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장르다.

국립무용단이 전통의 미학을 한데 엮은 산조를 춤으로 풀어낸다. 오는 24~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지는 무용극 ‘산조’를 통해서다. 새 단장을 마친 해오름극장(1200여 석)에 4년 만에 올리는 신작이다. 3막으로 이뤄진 극에선 산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1막에선 정제된 음악과 춤으로 균형을 설명하고, 2막에선 현대음악으로 변주한 산조로 무질서를 내보인다. 말미에는 절묘한 조화를 빚어내며 산조의 질서를 선보인다.

국립무용단과 함께 2013년부터 ‘향연’과 ‘묵향’ 등의 공연으로 전통춤 부흥을 이끈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의상과 무대 배경, 조명을 활용한 미장센(연출가가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으로 한국의 미를 풀어냈다. 산조의 본질만 살린 채 군더더기를 제거하며 시각 장치를 제작했다. 미니멀리스트로 유명한 그의 창작방식이다. 무대 연출이 단출하다. 첫 막에서 지름 6m의 바위 하나만 무대에 올려둔 채 무용수가 독무를 펼치는 식이다.

디자이너 정구호
디자이너 정구호
정구호는 “부연 설명을 줄이려고 이해하기 쉬운 상징물을 적극 활용했다. 2막에서 등장하는 삼각형 배경은 불안정함을 나타내고, 마지막 장에선 원형 LED 조명으로 완결성을 보여줄 것”이라며 “의상도 전통 복식의 인상적인 부분을 따서 제작했다”고 말했다. 경기도무용단 상임안무가 최진욱이 현대무용가 임진호와 함께 산조 가락을 안무로 창작했다. 두 사람의 지도에 따라 국립무용단원 20명이 산조를 몸짓으로 풀어낸다. 최진욱은 “‘흩어졌다 모인다’라는 산조의 의미를 소품을 통해 드러냈다. 무용수들이 막대를 들고 역동적인 군무를 펼치며 산조를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에도 공을 들였다. 대사 없이 몸짓으로 90분 동안 주제를 전하려면 배경음악이 중요해서다. 정구호는 황병준과 김재덕을 섭외했다. 그래미상을 두 차례(최고기술상·최우수 합창) 받은 황병준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현대무용가이자 작곡가인 김재덕이 산조를 모티프로 곡을 썼다. 황병준은 “전통을 세련되게 해석하는 정구호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며 “음악과 무용을 한데 어울러 오감을 만족시키는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1막에서는 이선화(거문고), 김동원(장고)이 정통 산조를 들려준다. 2막부터는 김재덕이 새로 만든 산조 변주곡이 흘러나온다. 국악기와 전자악기를 뒤섞고, 국악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크레센도 양식을 적용했다. 김재덕은 “아쟁과 거문고만의 특징만 남겨둔 채 모든 부분을 현대에 맞게 풀어냈다”며 “마지막 곡에선 아쟁 가락을 (라벨의) ‘볼레로’처럼 작곡했다. 기존 장단을 따라가지 않은 독창적인 시도”라고 이야기했다.

국립무용단의 음향 수준도 극대화했다. 해오름극장 내부에 들어간 몰입형 입체음향시스템(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을 활용한 것. 국내에선 처음 도입되는 음향 설비다. 총 132대의 스피커가 객석을 사방에서 에워싼 형태다. 황병준은 “각기 다른 소리를 전후좌우로 쌓아올리며 음악에 입체감을 더했다”며 “영화관보다 더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