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주의 IT카페] 6회

이건희미술관 수도권 유치 반대 靑국민청원까지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표심 의식한 행보 지적도
미술계 "이건희미술관 대신 국립근대미술관 적절"
삼성 미술관 '리움' 개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나희 관장이 설계자들과 함께 13일 오전 서울 한남동에서 삼성미술관 '리움'개관 버튼을 누르고 있다. 2004.10.13 [사진=연합뉴스]

삼성 미술관 '리움' 개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나희 관장이 설계자들과 함께 13일 오전 서울 한남동에서 삼성미술관 '리움'개관 버튼을 누르고 있다. 2004.10.13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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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회에 환원한 미술품들을 유치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나섰다. 저마다 이 회장과의 작은 인연까지 하나하나 꺼내들어 미술관 유치 당위성을 내세우는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권 "수도권 집중 더 이상 안돼"
왼쪽부터 이강덕 포항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사진=경북도 제공]

왼쪽부터 이강덕 포항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사진=경북도 제공]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이건희미술관, 수도권 건립을 극구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경남 진주시의 한 청원인이 올렸다고 진주시가 밝혔다.

청원인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지양하는 분산 정책을 내세워도 부족한데 또 수도권에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립 정책이 검토되고 있다고 들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시설의 분산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시대착오적 발상인 이건희미술관의 수도권 건립을 극구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진주 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와 진주시청년정책위원회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진주 이건희 미술관 유치위원회 청년유치기획단'도 10일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희미술관 수도권 건립 반대와 진주 유치를 주장했다. 진주는 삼성, LG, 효성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군 기업인들이 자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이강덕 포항시장과 주낙영 경주시장은 지난 10일 경북도청에서 만나 이건희미술관 유치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생가가 있는 경남 의령군은 이건희미술관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의령군은 아예 유치에 대비해 이 회장의 고향인 정곡면 일대를 건립부지로 검토하고 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이건희미술관 의령 건립은 이 회장님의 큰 뜻을 받드는 길"이라고 했다.
김두관 의원을 비롯한 부산·울산·경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으로 추진되는 미술관(이건희 미술관)의 부·울·경 등 비수도권 유치를 촉구하고 있다. 2021.6.8/뉴스1

김두관 의원을 비롯한 부산·울산·경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으로 추진되는 미술관(이건희 미술관)의 부·울·경 등 비수도권 유치를 촉구하고 있다. 2021.6.8/뉴스1

저마다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세종시의회는 "세종시는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국공립 미술관이 없다"며 "이건희미술관을 세종시에 조성해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하는 문화예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문을 발표했다.

이연희 충남 서산시의회 의장은 이건희미술관 서산 유치를 위한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서산에 건립되면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남 여수에선 초등학생들까지 등장했다. 지난 8일 '이건희미술관 여수유치원회'에 따르면 여수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직접 미술관 유치 바람을 담은 손편지를 썼다. 여수에서는 이번달 들어 7개 초등학교 430여명이 손편지 쓰기에 참여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국회의원들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희미술관 수도권 건립은 지방 불균형을 가속화시키는 수도권 일극주의"라면서 "문화·예술 분야 수도권 초집중과 과밀화를 부채질해 비수도권 지방민들의 문화적 소외감과 박탈감을 확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원, 제주 지역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용산구 "이 회장 자택·리움 등 위치…가장 적합"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 건립 부지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땅(사진)이 급부상하고 있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송현동 땅에 미술관을 지을 의사가 있는지 서울시에 문의했다. 서울시는 대외적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환영하는 방향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1.6.2 [사진=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 건립 부지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땅(사진)이 급부상하고 있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송현동 땅에 미술관을 지을 의사가 있는지 서울시에 문의했다. 서울시는 대외적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환영하는 방향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1.6.2 [사진=연합뉴스]

수도권은 굳히기에 들어갔다. 이건희미술품 특별관 용산건립 민간추진위원회는 11일 오전 용산문화원에서 '용산 건립을 위한 성명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진위에는 하정민 대한민국공공미술협회장, 박삼규 서울시문화원연합회장, 차대영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용산구 소재 숙명여대 미술대학에서도 이번 성명에 동참했다.

이들은 "용산은 이 회장 자택과 삼성미술관 리움이 위치해 있으며 고인의 기증품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자리한 곳이기에 고인의 뜻을 이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앞서 용산구는 이건희미술관을 용산가족공원 내 문화체육관광부 소유 부지에 건립하자고 문체부에 정식 제안했다. 구는 자체 추진 중인 510억원 규모의 '용산 역사문화 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해 향후 국립중앙박물관(고미술)-이건희 미술관(근대미술)-삼성미술관 리움(현대미술)으로 이어지는 '이건희 컬렉션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서울 강서구의 경우 겸재 정선의 작품 인왕제색도를 관내 겸재정선미술관에 유치하는 운동에 나섰다. 인왕제색도는 이 회장 유족 측이 지난 4월 국립 기관 등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 중 하나다.

인천시는 이건희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에 인천내항 1·8부두와 인천뮤지엄파크 2곳을 사업 대상지로 건의했다. 인천시는 2곳 모두 지역적·문화적으로 강점이 있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설 방침이다.
문체부, 조만간 이건희미술관 신설 방침 굳힐 듯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중섭의 '황소'를 소개하고 있다. 2021.5.7/뉴스1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중섭의 '황소'를 소개하고 있다. 2021.5.7/뉴스1

일각에서는 지자체의 과도한 이건희미술관 유치경쟁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술계 반응은 어떨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건희 미술관보다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5~8일 미술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이건희 컬렉션 활용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00명에게 설문을 발송해 148명이 응답했다.

응답자 중 78.4%(116명)가 '이건희 컬렉션' 활용 방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품과 합해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꼽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관리'(14.9%·22명), '장르와 시대를 모두 포함한 이건희 전시관 설립'(11.5%·17명)이 뒤를 이었다.

별도 이건희 전시관을 건립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눠 기증한 기증자의 뜻에 반함', '건립장소 선정의 어려움', '유형별, 시대별로 분류해야 하는 박물관학에 반함' 등의 의견이 많았다.

지자체들의 이건희미술관 유치 경쟁에 대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 분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및 지방 공립미술관들이 협업해 순회 전시하면 된다', '내년 지자체장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주장'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국설문에는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작가, 평론가, 갤러리스트 등 다양한 미술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결정권을 쥔 문체부는 고심 중이다. 지난달 24일 "이건희미술관 신설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 미술계를 비롯한 각계 의견 수렴 중"이란 발표 이후 진전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다수의 관계자들은 늦어도 이달 안에 문체부가 이건희미술관 신설 방침을 굳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국민을 위해 미술품들이 환원됐는데 더 이상 사회 분열로 확산되는 것을 고인께서도 원치 않으실 것이다. 문체부가 사회 통합을 최우선에 두고 잘 선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7월 29일 이건희 회장 가족이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참관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2012년 7월 29일 이건희 회장 가족이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참관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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